눈꺼풀이 천근의 무게를 못 이겨 스르르 감겨온다. 불을 끄고 침대에 눕는다. 넓은 거실과 방엔 나를 제외하고는 온통 컴컴한 어둠뿐. 어둠이, 누워있는 초로의 가슴을 짓누르고 목을 죄어온다. 숨이 막혀 벌떡 일어나 안방 옆의 주방에서 불을 켜놓고 다시 침대에 눕는다. 불빛이 위압적으로 어둠을 구석진 데로 몰아붙인다. 온몸을 감싸는 밝은 불빛이 숨통을 텄지만, 잠을 쉬이 청하기 힘들다. 불빛을 등지고 모로 누워 다시 눈을 감고 가만히 잠을 부른다.
지독하다. 뱀처럼 내게 소리 없이 다가온다. 시커먼 혀를 날름거리면서. 녀석은 언제나 아무도 없이 혼자 있을 때만 찾아온다. 온몸의 비늘들을 열심히 움직여서 미끄러지듯 늙은 가슴 속으로 파고든다. 가슴팍에서 머리를 쑥 빼고 혀를 날름거려서야 나는 비로소 녀석의 잠입을 깨닫는다. 혀 양옆으로 날카로운 이빨에서 맹독이 이슬처럼 영롱하게 빛난다. 자칫 속을 뻔했다. 보석인줄 알고. 한번 물리면 최소 하룻밤 뱀 같은 녀석과 싸우면서 잠을 설쳐야 한다. 가슴 답답하고, 숨차서 끝내 거실로 나와 서성대며 온몸에 달라붙은 녀석을 떨쳐내려 애쓴다.
녀석이 혐오스럽기도 하지만, 그가 주는 공포가 나를 더 옥죈다. 그 공포의 끝은 언제나 죽음이다. 가족도, 아무도 모른 채 홀로 죽는다는. 무섭다. 천근의 무게로 짓누르는 눈꺼풀은 어느새 한 나비처럼 가벼워져 버렸다. 외려 허공 속으로 날아오르려는 눈꺼풀을 끝까지 달래서 붙들고 있어야만 내일도 내게 선물로 다가올 수 있는 거다.
쓸쓸하고 외롭다. 혼자 있을 때 더하다. 손에 쥐고 있는 책(쇼펜하우어 아포리즘)이 내게 되묻는다. 당신의 인생이 왜 힘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하고. 아르투어 쇼펜하우어의 ‘비관’도 인간의 궁극적인 외로움에서 출발했겠지. 누군가를 향한 간절한 기다림으로 독사 같은 외로움을 떨쳐내 보련다. 눈을 감고 잠을 청하다 흠칫 놀란다. 독사가 어느새 내 품속으로 파고드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