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무렵 지인의 식당에서 오리탕으로 저녁끼니를 때웠다. 고춧가루를 풀지 않은, 맑은 탕이었다. 냄새부터 허기에게 반란을 부추겼다. 꼬르륵, 꼬르륵! 뱃속에서 난리가 났다. 급히 국물 한 숟가락으로 반란군을 달랬다. 아∼. 이렇게 구수할 수가. 국물 맛은 담백했다. 깔끔한 뒷맛이 연이어서 숟가락질을 재촉했다.
국물로 어느 정도 속을 달랜 다음 토막 난 오리고기를 한 점 입에 질끈 먹었다. 머릿속 오리고기는 질긴 기억으로 얽혀 있었다. 어라? 엄청 부드러웠다. 식감이 닭고기와 꿩고기를 동시에 소환했다. 한 점, 두 점…. 계속 고기사냥을 멈추지 않았다. 고기 맛 역시 담백했다, 국물처럼. 무엇보다 역겨워야 할 누린내가 나지 않았다.
허기의 난동질에 오리맑은탕을 폭풍 흡입했다. 담백한 맛, 부드러운 식감, 시원한 국물, 도대체 무슨 조미료를 넣은 거죠? “우리는 조미료를 일절 사용하지 않습니다, 딱 하나 소주를 넣습니다. 잡내 없애려고.”
그랬다. 소주로 특유의 오리냄새 지우고, 듬성듬성 썰어 넣은 큼지막한 무가 국물 맛을 깔끔하게 뒤처리한 모양이다.
오리탕을 먹으면서 허기진 유년을 떠올렸다. 흰 쌀밥 한 그릇이 소원이던 그 시절, 고기는 언감생심. 어쩌다 동네에서 소나 돼지를 잡을 때면 큰맘 먹고 한 근 끓어오던 아버지. 이 고기를 받아든 어머니는 커다란 무쇠솥에 물 가득 붓고 무를 잔뜩 썰어 넣어서 희멀건 고깃국으로 가족 상차림을 했다.
기름 동동 뜨는 고깃국에서 온갖 잡내가 콧속으로 파고들어, 가뜩이나 비위 약한 나는 억지로 ‘괴기’ 한 점 먹어보려고 참아냈던 배고픈 기억들. 그때 고기를 구워먹는 건 상상 밖의 일이었다. 한 사람 구이 양으로 십여 명의 식구들이 뱃속에 기름칠을 해야 했으니.
조방 앞 식당 ‘낙동강오리알’에서 먹은 오리맑은탕은 오래 잊힌 나의 소울 푸드로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