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기진 시선을 탓할까. 지친 두 다리를 나무랄까. 하필이면 내 시선에 들어왔고, 내 늙은 눈동자가 글씨를 읽어낼 만큼 간판 가까이 다가서버린 거다.
미나리 꼬막비빔밥. 미나리도, 꼬막도, 비빔밥도, 어느 하나도 내 허기가 외면할 수 없었다. 허기 아닌, 평소 구미만으로도 미나리 꼬막비빔밥 앞에서는 내 결정장애는 봄눈 녹듯 스르르 사라졌을 게 뻔하다.
유명 죽집 홀 벽면에 나붙은 메뉴를 보니 아예 비빔밥집으로 업종 전환을 해야 할 판이다. 죽 메뉴들은 여전했지만, 손님들의 시선을 더 끌게 부착해놓은 건 비빔밥들이었다. 이름 그대로, ‘미나리 꼬막비빔밥’엔 큼직큼직 쓴 미나리와 갯내 머금은 꼬막조개가 듬뿍 들어있었다.
수저를 이용해 쓱쓱 비벼서 한 입 크게 입안에 우겨넣었다. 미나리의 식감과 향이 상큼했다.게다가 하얀 쌀밥과 버무려진 꼬막무침은 끝내 어머니와 시골 들판의 새참 추억을 불러냈다.
봄에 접어들면 어머니아버지는 들일 바빠져서 아예 들판에서 새참으로 노동에 지친 몸을 부추겨야 했다. 미나리 초무침과 꼬막무침, 보리밥이 전부였지만 꿀맛이었다. 끓는 물에 살짝 데친 미나리를 초고추장에 버무린 미나리 초무침은, 그 속에 가오리나 멸치회가 들어있건 말건 결코 맛을 지배할 수 없었다.
보리밥에 비벼서 커다랗게 한 숟갈 입안에 넣고 먹을 때면 세상 부러울 게 없었다. 거기에 짭조름한 꼬막무침까지 곁들여졌으니….
질긴 생명력을 자랑하는 미나리, 강한 해풍과 거친 파도 헤치고 개펄에서 꿋꿋하게 버텨낸 꼬막. 간난신고의 유년을 지탱해낸 소울 푸드에 다름 아니다. 미나리 꼬막비빔밥을 먹던 그날 나는 죽집 홀이 아닌, 노루밭 들녘에서 어머니아버지와 함께 새참을 즐기고 있었다.
[2023년 3월 24일 153호 1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