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날씨가 섭씨 10도 대로 떨어졌다. 쌀쌀한 느낌이 따뜻한 국물을 부른다. 지하철 역사 안 어묵가게에도 사람들이 조금씩 북적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가게에서 삐어져 나온 어묵국물 냄새가 끈적거리는 몸에 달라붙…
눈꺼풀이 천근의 무게를 못 이겨 스르르 감겨온다. 불을 끄고 침대에 눕는다. 넓은 거실과 방엔 나를 제외하고는 온통 컴컴한 어둠뿐. 어둠이, 누워있는 초로의 가슴을 짓누르고 목을 죄어온다. 숨이 막혀…
기장밥, 보리밥, 찰보리밥, 율무밥, 쥐눈이콩밥, …. 세 살에서 다섯 살짜리 유치원생들의 점심식사 메뉴다. 한결 같이 식감이 거친 것들이다. 다 큰 젊은이들도 식감 탓에 먹기 꺼리지 않은가. 물론 나처럼 익어가…
퇴근 무렵 지인의 식당에서 오리탕으로 저녁끼니를 때웠다. 고춧가루를 풀지 않은, 맑은 탕이었다. 냄새부터 허기에게 반란을 부추겼다. 꼬르륵, 꼬르륵! 뱃속에서 난리가 났다. 급히 국물 한 숟가락으로 반란군을 달랬…
허기진 시선을 탓할까. 지친 두 다리를 나무랄까. 하필이면 내 시선에 들어왔고, 내 늙은 눈동자가 글씨를 읽어낼 만큼 간판 가까이 다가서버린 거다. 미나리 꼬막비빔밥. 미나리도, 꼬막도, 비빔밥도, 어느 하나…
국민학교 시절 월남전에 참가한 집안 아재로부터 처음 베트남이라는 나라를 듣게 됐다. 사람 외모뿐만 아니라 전쟁 중인 베트남의 참상까지 보태져 첫 이미지는 ‘꾀죄죄하다’는 거였다. 이 첫 이미지가 내 안에 ‘베…
식집사? 생뚱맞은 신조어 앞에 아날로그 초로는 잠시 머릿속을 굴려본다. 두 말 할 것 없이 요리를 떠올린다. ‘식’은 아마도 ‘食’일 테고, 집사야 뭐 ‘집안일을 보는 사람’을 지칭하니 ‘홀로 집에서 요…
한낮 온천천 갈맷길은 뜨거웠다. 구름을 비집고 내리쬐는 햇볕이 약해진 늙은 피부를 따끔거리게 하지만, 후텁지근한 뒤끝의 칙칙함은 느껴지지 않아서 좋다. 반소매 밖으로 드러난 살갗에 내린 햇볕이 몸속의 칙…
요즘 60대 A씨는 고민에 빠졌다. 여름휴가 때 받기로 했던 백내장수술 때문이다. 사물이 점점 흐릿해지고 난시까지 심해서 백내장 수술시 다초점 노안교정까지 받으려 했으나, 뜻밖에 수술비 부담 탓에 …
요즘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푹 빠졌다. 한번 본 것은 절대 잊어버리지 않는 천재적인 두뇌와 자폐스펙트럼을 동시에 가진 신입 변호사 우영우의 대형 로펌 생존기다. 매주 2회 분량씩 …
따사로운 봄날 아침 / 꽃들은 다투어 뽐내며 피어나고 / 마을은 이토록 조용하고 평화로운데 / 저 전장戰場의 봄은 / 모래폭풍 세차게 불어대고 / 먹구름 하늘을 가린 채 / 포성과 비명으로 얼룩지고 있으…
모처럼 가족외식을 하려다 포기했다. 퇴근길 아파트 앞 식당들은 문전성시였다. 코로나 방역완화 조치가 이들을 불러들인 모양이다. 비록 가족 모두 확진 덕분에(?) 슈퍼항체를 갖고 있긴 해도, 다닥다닥…
제20대 대통령선거가 본격 시작됐다.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곳곳에 선거 현수막들이 내걸렸다. 이른 아침 지하철 역사 앞에서 각 후보 홍보피켓을 든 선거운동원들이 저마다 한 표를 호소하면서 방긋 출근…
‘말더듬이 염색공 사촌형은 /10년 퇴직금을 중동취업 브로커에 털리고 나서 / 자살을 했다 /돈 100만 원이면 / 아파 누우신 우리 엄마 병원을 가고 / 스물아홉 노처녀 누나 꽃가말 탄다 /돈 1.0…
한여름으로 치달으면서 소매 길이도 점점 짧아지고 있다. 노출되는 신체부위는 점점 더 넓어지고 있다. 요즘 몸에 문신을 한 이들이 많다. 주로 젊은이들이 팔이나 다리, 목덜미 등에 여러 문양을 새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