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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사는 세상

고엽제가 남긴 상처

 
 
최근 부산에서 한 고엽제 후유증에 시달리던 60대 베트남전 참전용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일어났다. 고엽제 후유증에 시달리던 그는 평소 "몸이 너무 아프다, 이렇게 살아서 뭐하겠느냐"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뱉어내다가 끝내 자신이 치료를 받고 있던 병원 6층 옥상에서 투신해 생을 마감한 것이다.
 
그는 폐렴 합병증과 정신분열 증세로 20여 년간 정신요양병원을 전전하며 치료를 받아 왔다. 현재 우리나라의 고엽제 피해환자로 판정받아 병원에서 치료받고 있는 환자는 3만 여명으로 집계되고 있으나 그 이후에 태어난 자손들에게 그 후유증이 유전된 경우까지 합하면 피해자는 엄청나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나는 베트남전에 참전한 뒤 폐암에 걸려서 3년간에 걸친 혹독한 치료를 받고서야 일어난 고향의 한 후배를 지켜본 적이 있다. 그는 치료과정에서 머리카락이 모두 빠지는 등 고통스런 나날을 보낸 끝에 완치되어 평소와 다름없는 생활을 하고 있다.
 
또 60년대 말 부산항 3부두인가에서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참전용사 출정식에 참석, 병사들을 격려하던 모습을 떠올릴 때마다 씁쓰레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1960년대 미국이 베트남전을 대행하고 나서자 미국내에서는 찬반양론으로 나라가 시끄러웠고, 국민들의 마음이 산산조각 분열되었다.
 
전쟁을 찬성하는 참전파들은 베트남전쟁이야말로 핍박받는 민족해방을 위한 성전(聖戰)이라고 주장, 전쟁을 독려했다. 반면 전쟁을 반대하는 이른바 반전파 측에서는 그건 추악한 살인행위의 악마전(惡魔戰)이라며 대대적으로 들고 일어났다.
 
미국이 역사상 최대규모의 전쟁물자와 화학 무기를 마구잡이로 투입하고 최대의 병력을 동원, 희생을 치루었으나 결과는 미군의 철수-패배로 끝나고 말았다. 미국은 군대와 전쟁물자와 화학무기만 쏟아부으면 전쟁은 승리로 끝나는 것으로 단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베트남 민족의 끈끈한 민족의식과 정글, 그리고 땅굴같은 지형적 특성을 미처 생각하지 못한 채 ,성전,인지 ,악마전,인지의 전쟁이라는 탁류 속으로 단숨에 뛰어들게 된 것이다. 전장에서의 젊은이들은 쾨쾨한 골방의 드럼통같은 테이블에 둘러앉아 러시안룰렛게임이라는 목숨을 거는 생명게임에 빠져든다.
 
권총에 탄환을 장전할 때 총알 한 개를 채워넣고 나머지를 비워둔 채, 총창을 빙빙 돌린 다음 총구를 오른 쪽 관자놀이에 들이대고 방아쇠를 잡아당긴다. 방아쇠가 당겨지면 총알은 오른 쪽 관자놀이를 뚫고 들어가서 왼쪽관자놀이로 관통하는 생명게임이다.
 
사느냐 죽느냐의 확률이 5대1인 전쟁놀이를 즐기면서 마리화나와 죠니워커와 버번을 목구멍에 털어넣으면서 사회와 국가에 맞섰다. 반전영화 <디어헌터>가 미국사회에서 공전의 히트를 하자 이어서 <지옥의 묵시록> 같은 전쟁의 참혹함을 고발하는 흥행물이 사회를 휩쓸고 있었다.
 
젊은이들은 허옇게 초점 잃은 눈동자를 뒤집으면서 반항했고, 내일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정글전투라는 난관에 부닥친 미국은 고엽제를 쏟아 부어서 이 난관을 뚫고 나가는 화학병기 고엽작전 이른바 오렌지작전을 5년간이나 시행했다.
 
결과는 상상하기도 어렵다. 고엽제는 24D같은 두 종류의 제초제를 섞어서 만든 최악의 독성물질이다. 미국내에 있는 독성물질을 제거하기 위해 택한 방법이 베트남 전쟁 외에 한국의 미군주둔지역에 파묻는 방법이었다.
 
베트남전 참전용사 가운데서 고엽제피해를 입은 우리나라 군인들에 대한 파악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인데, 이번에는 고엽제를 우리나라 휴전선에 마구잡이로 뿌리고 미군부대내의 땅속에 파묻은 것이다.
 
이제 참전용사와 우리의 산야뿐이 아닌 국민 모두의 몸과 마음까지 깡그리 오염이라는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것이다.
 
[2011년 6월 20일 20호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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