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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사는 세상

그 파란 물 눈에 보이네

 

배 승 원 편집고문

 
 88올림픽대회 개최를 앞두고 서방의 언론인들이 한국 특히 판문점 일대의 비무장지대를 찾아온 적이 있었다.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한국에서 올림픽이 제대로 치뤄질 수 있을 것인가하는 의구심을 해소하기 위한 의도에서였다. 서울을 비롯한 주요 도시를 둘러보고 우리나라의 발전상과 판문점을 세세히 탐색한 서방기자들은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영국의 한기자의 눈에 비친 사정은 달랐다. <어딘가 노려보는 총구에서 화약냄새가 사라지지 않는다>였다.

 천하무적의 천안함 사태가 일어난 지도 한 달이 지났다. 전 국민이 오열하는 가운데, 비록 전사자 몇 명은 유해도 찾지 못했지만 장례절차도 마무리 되었다. 전국에 분향소가 마련되던 날 우리들 모두의 가슴 깊숙한 곳을 파고든 바람과 천둥과 40년래에 없었다는 4월 말의 눈보라와 우박이 그 슬픔을 말해주었다. 지금도 모두들 울고 있다. 하늘도 땅도 울고 있음이다.
 
 그래서 4월을 잔인한 달이라 했는가. 모든 걸 알고 있다는 듯 물결만 일렁이고 있는 백령도 바다는 중국 남경으로 이어지는 뱃길, 빼어난 경치와 풍부한 해산물과는 달리 거센 파고로 옛날부터 험난한 뱃길로 이름난 바다였다.

 저 유명한 심청이 공양미 삼백석에 팔려 천길 물속에 몸을 던진 인당수가 아니던가. 심청전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한곳에 당도하여 돛을 지우니 이곳이 인당수라. 광풍이 대작하고 바다가 뒤눕는데 어룡이 싸우는 듯 바다 한 가운데 돛도 잃고 닻도 끊어지고 노도 잃고 키도 빠져 바람 불고 안대 뒤섞여 잦아진 날> <이애야 저꽃이 어인 꽃이나? 천상의 월계화냐. 요지의 벽도화냐. 아마도 십상 심낭자의 혼인가 보다!> 선인들이 그 말을 듣고 황급하여 벌벌 떨며 그 꽃을 고이 건져 헛간에 모신 후에 청포장 둘러치니 체통 분명하다.
 
 닻을 달고 돛을 다니 순풍이 절로 일어 남경이 순식간이라. 해안에 배를 매었더라. 이렇듯 백령도는 연꽃으로 환생한 심청의 아름다운 효성이 우리 민족의 가슴에 영원히 새겨져 있어야 할 바다였다.  독도와 울릉도를 포함한 동해 또한 오징어와 고래잡이로 일찍부터 세계 각국이 각축전을 벌일만큼 고래의 황금어장이었다.

 일대의 바다에 바글거리는 고래잡이 황금어장을 선점하기 위한 해양국가들의 기싸움으로 동해는 등이 트지는 형상이었다. 네델란드 영국 독일은 물론 미국까지 동해어장점령에 기를 쓰고 몰려든 적이 있었다. 이 동해와 서해를 피의 바다로 얼룩지게 한 1996년 강릉잠수홤 침투와 2002년의 서해교전을 비롯해서 최근의 잠수함 침투만도 여섯 번이나 있었다.
 
 그곳은 이미 정감어린 바다라고 부를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백령도에서 빤히 마주보이는 북녘의 해안선은 위장된 군사요지로 둔갑하여 비상시에는 물속에 있던 잠수정이 땅굴로 이어지는 레일을 통해 지하로 숨어드는 요새로 변했다고 한다. 해안의 바위벽에는 땅굴을 파서 잠수정이 숨어들 수 있게 되어있고 각가지 병기로 채워져 있다고도 한다. 벌집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 벌집 앞에서 무리 지어 날아다니는 새떼를 보고 전쟁상태에서나 있을 법한 대포를 몇 백발이나 쏘고 있었다는 기사도 있었다.
 
 이 첨단과학시대에 몇 십미터 아래에 가라앉은 천안함을 끌어올리는데 그렇게 많은 시간이 걸려야 했는가. 바위벽에 파놓은 벌집에 들어앉아서 이쪽의 소동을 빠끔히 바라보면서 그것을 즐기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 파란 바다 위에서도 화약냄새가 나지 않는지 물어보고 싶다.
 
 
[2010년 4월 30일 7호 19면]
 
[2010년 4월 30일 7호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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