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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사는 세상

바람난 사회


 
 
 
 
                                                                                                                                           배승원 편집고문
 
 
  해방과 6.25전쟁이 휩쓸고 간 우리 사회가 점차 안정을 되찾아가고 있던 1954년 한해에 도덕성 논란을 불러온 대사건이 두 번이나 연달아 터진 적이 있다.
 
  하나는 그해 1월1일부터 한 신문에 연재되기 시작한 정비석의 소설 <자유부인>이었다. 소설이 연재되자 3월로 접어들면서 서울대 황산덕 교수는“ 자유부인 작가에게”라는 글을 통해 우리 사회와 대학교수부인을 모욕한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작가는“ 대학교수답지 않게 감정적으로 흥분한다”면서 반격에 나섰고 반격은 새로운 반격을 낳고 드디어 여성단체가 성윤리와 도덕성을 문제삼기 시작했다. 어수선해진 분위기 덕분에 소설을 연재한 신문은 구독자가 3배로 늘어나는 행운을 차지하게 되었다.
 
 다른 한 사건은 대학재학중 6.25전쟁에 참천했다가 제대한 한 청년이 해군대위라고 속이며 여대생 등 70여명의 미혼여성과 성관계를 가지다가 탄로 난 사건으로, 이른 바 박인수 사건이 그것이다.
 
 그가 상대한 여성은 70명이라고 실토했으나 단 2명의 여인만이 그를 혼인빙자간음혐의로 고소하는데 그쳤다. 재판부는“ 법원은 보호 할 가치가 있는 정조만을 보호한다”며 박인수에게 무죄를 선고함으로써 또 한 차례 소동이 일어났다.
 
하지만 논란이 끊이지 않자 2심과 대법원은 6.25동란 이후 문란해진 사회의 성 풍속을 개탄하면서 그에 대한 처벌 여론을 감안해 유죄판결을 내리기에 이르렀다. 이 사건은 "보호할 가치가 있는 정조"와 함께 "나와 교제한 수많은 여인 중 처녀는 미용사인 이 모양뿐이었다"고 실토한 그의 말이 또 한 번 파문을 몰고 왔다.
 
 법무당국은 추진중인 형법개정 작업을 통해서 간통죄를 삭제하거나 수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비로소 우리나라는 성관계 형벌조항 가운데서 혼인빙자간음죄는 역사속으로 사라지고 그조항은 박물관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간통죄에 관한 조항도 운명의 날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이미 우리사회는 춤추는 자유부인을 두고 그 시절과 같은 자유부인이라고 지칭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손가락질하거나 지탄하는 사회가 아니다. 또 춤이나 남녀교제를 그렇게 질타하는 눈으로 바라보지도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자유부인>은 우리주변을 꽉 메우고 있고, <박인수>는 수도 없이 득실거리고 있다. 이러다간 불륜과 외도가 바로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 되는 시대가 온 것이다.
 
 실제로 통계를 보면 혼인 빙자 간음죄로 고발하는 경우는 갈수록 줄어 들고, 고발을 한다 해도 그 숫자는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박인수시절에도 70여명의 여인 중 고발한 여인은 단 2명에 그치지 않았다고 하지 않았던가. 웃기는 개그 한 장면을 소개한다.
 
 옆집 남자와 간통을 즐기던 한 여인이 법정에 서게 되었다. 피고인에게 최후의 진술을 할 기회가 주어졌다. 여인은 재판장을 노려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재판장님! 언제부터 국가가 저의 이불속을 관리하기 시작했습니까?"

 정말 배꼽을 쥐고 흔드는 개그이자 농담일 따름이지만 뭔가 찜찜한 여운이 가시질 않는 농짓거리임에 틀림없다. 자칫 불륜과 외도가 정조와 혼동될 우려마저도 없지 않다. 그러나 혼인은 숭고한 것이지만 깨어졌을 때의 상처와 피해는 전적으로 여성에게 전가되는 것이다.
 
 혼인빙자 관련죄는 사실상 여성의 인권을 보호한다기 보다는 여성의 정조를 보호하는 법익이다. 보호대상은 음란한 여성이 아닌 일반여성일 뿐이다. 그런 점에서 여성의 자율적인 자기관리가 열쇠일 수밖에 없다.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는 이렇게 지적했다. 여성은 의존의 대상이 아니다. 자율적주체다. 모두가 더불어 성 평등한 관계 맺기, 성적 자기 결정권 존중, 소통적인 관계 맺기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가능할 때 혼인빙자간음은 일어나지 않는다.
 
 [2009년 12월 23일 2호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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