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승원 편집고문
그저께 가을 눈이 내렸다. 몇 해째 눈구경을 하지 못해 앙탈을 늘어놓는 사람도 없지 않는 부산에 가을눈이 내렸다. 절기상으로는 입동이 지났고 소설이 다가오기 며칠 전이라고 하지만 11월 중순에 내린 눈을 두고 사람들은 30년 만에 내린 가을눈이라고도 한다.
산길을 걸어가는데 파란 소나무가지 위에 혀있는 눈이 딴 세상을 연출해내고 있었다. 소나무를 바로 밑에서 올려다보노라면 동그란 가지에 내려앉은 눈뭉치가 마치 우산을 펼쳐놓은 것처럼 보이고 그런 소나무가지가 산을 바라보는 시야 전체를 하얗게 장식하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주변은 완전히 딴 세상으로 변해있었다. 눈을 좋아하는 까닭이리라. 부산에서는 산등성이에 흰듯펀듯 쌓인 눈, 그것만으로도 경이로움이고 즐거움이었다.
눈이 내리기 전 벌써 우리를 즐겁게 해준 것은 이 땅의 딸들인 여성이었다. 피겨의 전설 김연아가 그랑프리 시리즈 연 7회 우승을 따내‘ 세계무대에서 전설의 후예’로 등극했고, 골프의 신예 미셸 위가 6년의 각고 끝에 미국 LPGA투어 로레나에서 우승컵을 가슴에 품었다. 신지애도 이 LPGA의 상금왕으로 확정되었다는 소식이다.
또 있다. 세계 최고의 역사를 가리는 경기도 고양에서 개막된 2009세계 최고역도선수권대회에서 우리의 자랑 여자헤라클레스 장미란 선수가 세 가지 과제를 달성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는 순간이다. 첫째로 75kg이상급 4연패와 둘째 또 하나의 신기록 작성여부 셋째 용상 200kg 도전을 두고 숨고르기를 하고 있는 중이다.
눈은 설레임이고 축복이라 하지만 그 눈이 녹기도 전에 주변에서는 제대로 돌아가는 게 없다. 온통 짜증나는 소리, 한탄하는 소리뿐이다.
직장을 구해보겠다고 도시로 나온 고향의 후배는 백군 데도 더 많은 기업에 취직원서를 들이댔으나 번번이 딱지만 맞았다며, 오늘도 축 쳐진 어깨를 늘어뜨리고 있었다. 그 젊은이를 대할 낯이 없다.
문을 연지 몇 달 되지 않은 이웃의 김밥집이 그새 문을 닫았다고 한다. 뉴스를 대하기가 두렵다. 변종독감이라는 신종플루는 우리를 더욱 가슴 조여오고 있다. 한 사람 밖에 없는 어린이를 둔 부모들의 마음은 더욱 초조할 수밖에 없다.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나랏일은 우리를 더욱 슬프게 한다. 4대강 사업, 세종시 문제, 미디어법 문제, 비정규직 근로자문제, 어느 것 하나 우리들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게 없다.
이런 판에 부산의 명물시장 한 편에서 이번에는 관광객을 포함한 열 명도 넘는 사람이 불에 타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사고현장을 찾아온 일본의 가족들이 침착한 속에서 오열을 삼키고 있는 밤사이 내린 눈은 그래서 우리를 더욱 감상에 젖어들게 한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우리를 우울하게 만드는 것은 소통이 되지 않는 우리 사회의 꽉 막힘현상이라는 사실이다. 무엇이든 정상적인 대화로 풀어나갈 생각은 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막무가내식 일 처리가 이런 고통을 모든 사람들에게 안겨주고 있는 것이다.
갈등을 빚고 있는 미디어법개정만 보더라도 여론을 확대한다는 점에서는 이론이 있을 수 없지만 속내는 저마다 뒤틀려있는 실정이다.
첫눈이 내리는 환희의 순간, 반짝이는 여성주자들이 앞서나가는 이 순간, 미디어법 같은 것을 두고 이해당사자 쌍방간이 부글부글 끓고 있는 이 순간, 부산여성뉴스의 탄생은 꽉 막힌 우리사회의 통로가 되어줄 것이 확실하다.
작은 것이 아름다운 것이다. 직장과 사회 여러 분야에서 여성들의 활약상을 다시 말할 필요는 없지만 부산여성뉴스는 여성사회의 등불같은 존재가 되기를 기대하는 마음 간절하다.
[2009년 11월 23일 창간호 2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