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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성폭력 범죄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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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고종석 사건, 서진환 사건 등 폭력의 수위가 너무도 심각한 성범죄가 일어나 분노를 금할 길이 없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차분하게 문제를 바라보고 해법을 찾아야 한다.
최근 고종석 사건, 서진환 사건 등 폭력의 수위가 너무도 심각한 성범죄가 일어나 분노를 금할 길이 없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차분하게 문제를 바라보고 해법을 찾아야 한다.
 

지난 9월 5일 새누리당 박인숙 의원이 성폭력범의 재범 방지를 위해 ‘물리적 거세’를 허용하자는 법안을 발의한 후 성범죄자의 처벌 수위를놓고 논란이 뜨겁다.
 

인터넷과 모바일 앱 사용자들을 대상으로 한 어떤 설문조사에서는 물리적 거세를 찬성하는 사람이 75퍼센트에나 이르렀다고 한다. 최근 몇 년 간, 특히 어린 아동들을 대상으로 끔직한 성폭력이 자행되었으니 6살짜리 딸을 키우는 엄마로서 이런 국민감정이 이해가지 않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지금의 공포와 분노를 언론이 나서서 지나치게 조장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방송과 신문이 성폭력 범죄를 보도하는 방식이 너무 선정적이라 서다. 한국 언론의 선정성 문제가 비단 이사안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라 해도 사인이 중대한 만큼 언론은 좀 더 신중해야 한다.
 
 
대부분의 방송과 신문이 성폭력 범죄의 수법과 범죄자의 의도를 지나치게 자세히 보도함으로 써 오히려 모방범죄를 부추기지나 않을까 걱정이다.언론이 자극적인 자살보도를 하면 자살하는 사람의 수가 많아지는 베르테르효과가 나타난 다는 것은 여러차례 검증된 바 있다.
 
언론이 성폭력 피해자들의 사생활과 신상을 무리하게 노출시키는 것도 큰 문제다. 그러다보니 왜 피해자의 어머니는 밤늦게까지 집에 들어오지않았는지,왜 부모가 게임중독에 빠졌냐는 식으로 네티즌들이 피해자 가족을 질타하는 웃지 못 할 일도 벌어졌다.
 
 
피해자의 집에까지 찾아가서 평소 피해자가 밤에 산책하는 것을 좋아했다는걸 알아내는 것이 도대체 왜 필요한가? 피해자와 그 가족을 보호하기는커녕오히려 살던 곳을 떠나도록 내모는 것은 아닌가?
 

전자발찌, 화학적 거세, 물리적 거세, 범죄자 신상 공개 등 가해자 처벌 위주의 사후 대책만 논의하다보니 정작 근본적인 문제는 보지 못해 아쉽다. 성폭력은 아주 오랫동안 피해자가 수치심을 느껴야만 하는 어떤 ‘도덕의 문제’였다.
 
그러나 단호하게 성폭력은 범죄일뿐이다. 겪지 않아야 할 일이지만 겪게 되었다면 죄인을 처벌해야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리고 국가와 공동체는 피해자가빨리 피해를 극복하고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지원하고 격려해야 한다.
 
또 피해자가 꼭 회복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어야 한다. 17세기 말 프랑스에서는 아버지에게 강간을 당한 한 소녀에게 5년 추방형의 형벌을 내렸다. 물론 아버지에게도 9년 징역형을 선고했으나 피해자도 범죄에 연루되었다고 보았던것이다.
 
이런 태도는 성폭력 피해자가 순결과 처녀성을 잃었다고 보는식의 관념과도 연결되어 있었다. 우리 사회는 그때보다 나아졌나? 그렇지 않다. 우리 형법이 아직도 성폭력 죄를 친고죄로 규정하고 있는것을 보면 나아진 것이 별로 없다.피해자가 순결을 잃었고, 따라서 뭔가 부끄러워 할 것이라는 논리가 바로 이 친고죄 규정에 담겨 있다.
 
폭력은 중대한 범죄이니 범인을 찾아내 마땅히 알맞은 벌을 주고, 반드시 교정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줘야 피해를 당한 사람들이 자신을 드러내고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 끔찍한 아동 성폭력 사건 외에 가까운 사람들에게 일상적으로 성폭력을 당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는 사실을 외면해선 안 된다.
 
지금까지 재판부가 성폭력 범죄에 지나치게 온정적으로 대처해온 만큼 실형 비율을 높여야 한다. 물리적 거세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지만 그동안 우리 재판부는 아이들의 증언 능력을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도가니 사건’을 떠올려보라. 당연히 유죄를 받고 실형을 살아야 할 가해자합의니 집행유예니 하는 방식으로 교묘히 벌을 피하지 않았나. 우리 사회 성문화 전반에 대한 반성도 필요하다. 폭력적인 가정에서 뛰쳐나온 아이들은 폭력적인 사회와 만난다. 가정은 늘 단란하지 만은 않고, 사회가 만들어놓은 보호조치는 너무도 미약하다.
 
법으로 금지하고 있어도 성매매 산업은 다양한 형태로 성업 중이고, 어떤 어른들은 거리낌 없이 아이들의 성을 산다. 10대 성매매도 성폭력이다. 많은 국민들이 성폭력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는 만큼 좀 더 중요한 문제들을 짚고 넘어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예컨대 성교육도 제대로 해야 하고 성폭력을 둘러싼 오래된 편견부터 깨어야 한다. 친고죄 규정도 폐지해야한다. 가해자 처벌만큼 피해자 보호와 지원도 중요하다. 공포를 지나치게 조장하면 아이들은 어릴 적부터 보호에 익숙해지고따라서 그들의 근본적인 자유를 박탈당한다.
 
매일매일 차로 실어 날라지는 아이들이 과연 자율을 경험할 수 있겠는가? 어른들이 공포에 떨거나 수치심에 먼저 기절해버리면 아이들이 도대체 누구와 해법을 상의할 수 있겠는가? 아이들이 좀 더 안전한 세상에서자유롭게 자랄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좀 더 차분하고 냉정해져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2012년 9월 25일 제35호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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