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rrent Date: 2024년 05월 03일

기고

골프와 정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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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골프만큼 사회적으로 민감한 스포츠는 아마 없을 것이다. 다른 운동은 다 괜찮은데 골프만이 유독 사람들이 눈을 흘겨보는 대상이요, 아직도 골프만이 마치 해서는 안 될 어떤 금단의 열매인 것처럼 치부되기도 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골프가 국민들의 지탄의 대상이 되고 일부 부유층이나 권력자들의 전유물로 인식되어진 배경에는 우리나라에서 골프가 어떻게 보급되고 확대, 발전되었는가를 보면 그 이유가 자명해진다.

벌써 오래된 이야기의 주인공이긴 하지만 한때 중앙정보부장으로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던 김형욱이란 사람이 있었다. ‘남산의 부장들이라는 책의 주인공이자 같은 이름의 영화의 주인공으로 후배 정보부 직원들한테 프랑스 파리에서 납치되어 양계장 사료 믹서기에서 비참한 최후를 마친 바로 그 인물이다. 이 분이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골프광으로 널리 알려졌는데, 권력의 정점에서 세상에 무서울 게 없던 시절 놀랍게도 한국골프협회 회장도 역임했다니 권력과 골프가 결합된 최초의 인물이 아니가 싶다. 그 바쁜 와중에도 시간만 나면 골프장으로 줄행랑치고, 당시 국내의 유력 재벌들을 불러 모아서 심심치 않게 용돈 벌이도 했던 김형욱은 많은 일화를 남겼다.

어느 날 몇몇 재벌들과 돈내기를 하던 중에 볼이 그린 방향으로 가긴했는데 도무지 볼을 찾을 수가 없었던 김형욱은 그린 주변에 볼을 하나 얼른 놓고는 내 볼 여기있어...” 하고 소위 알까기를 했다는 것이다. 다들 마크를 하고 퍼팅을 하던 중에 홀컵 안에 볼이 하나 들어있는 걸 누군가 발견했는데, 그 볼이 바로 김형욱이 친 볼이었던 것이다. 평소 골프는 신사운동이다, 심판이 없어도 양심에 따라 치기 때문에 타수를 속이거나 알까기를 하는 놈들은 주리를 틀어야 한다고 일갈해온 김형욱이로서는 난감하기 그지없는 돌발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어떻게 일을 수습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평소의 넉살과 비위 좋은 뱃심으로 위기를 넘겼겠지만 이글을 해놓고도 기뻐하기는커녕 사기꾼이 되었으니...

이 자의 또 다른 이야기... 평소 자기와 타수가 비슷한 어느 재벌 회장이 갑자기 골프를 자기보다 훨씬 잘 치게 되자 주변에 다방면으로 수소문을 해 봤는데... 어느 프로골퍼가 전담으로 그 회장을 봐주고 있다는 정보를 얻게 되었다. 그 얘기를 듣자마자 숨도 안 쉬고 이 프로골퍼를 남산으로 끌고 와서는 마구 두드려 패고 그것도 모자라 모진 고문을 가해 그 프로골퍼는 거의 만신창이가 되어 실려 나왔다는 얘기가 파다했다. 그 이후로 김형욱과 골프를 치는 사람들에게는 절대 레슨을 하지 않는 게 당시 프로들 사이에 금기사항이었다나 어쨌다나... 잘못했다간 뼈도 못추리는 일이 발생할 수 있기에...

어느 고위 공직자가 물난리에 공을 쳤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는 것 아주 흔한 일이요, 누가 누구와 타당 몇 백만 원의 내기골프를 하다가 적발되어 망신을 당했다는 일도 골프장 주변에서는 흔히 들리는 이야기다. 볼도 잘 못치면서 수 천만 원 대의 금장 골프채를 가지고 다닌다는 분도 있고...

골프인구가 연간 4천만 명 시대를 맞고 있는 요즘, 프로야구 연간 관람객 보다 더 많은 골프인구를 가진 대중스포츠로서의 골프가 제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이전에 덧씌워진 부정적인 이미지를 말끔히 씻어낼 방안과 노력이 있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남녀노소 누구나가 부담 없이 누구 눈치 보는 일 없이 파란 잔디밭에서 잠시라도 심신을 쉬어갈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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