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rrent Date: 2024년 05월 03일

기고

한국골프의 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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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골프의 계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한국 골프의 판도라고 해야 할 지... 우리나라 골프는 1990년을 기준으로 그 이전과 그 이후가 확연히 갈린다. 90년대 이전에 골프를 하던 사람들과 90년대 이후에 골프를 하던 사람들은 확연히 다른 부류의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인적구성 측면에서 보면 더욱 그렇다는 얘기다.

1980년대만 하더라도 국내에 골프장이 백 개가 채 되지 않았다. 남녀 프로골퍼의 수도 각각 백 명이 채 되지 않았다. 90년대를 넘어와서도 골프장 수나 프로골퍼의 숫자도 그렇게 큰 변화는 없었다. 따라서 웬만하면 누구누구를 다 알만했고 그 사람이 누군지, 무얼하다 골프로 넘어왔는지 그 족보마져 다 꿸만치 오밀조밀 작은 동네처럼 서로가 서로를 소상히 알만했다.

한국 프로골퍼의 계보는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생계를 위해 골프에 뛰어든, 골프를 생업으로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경우이고, 또 한 부류는 그들과 한 세대 정도 차이가 나는 비교적 경제적으로 성공한, 그래서 주말에 골프채를 들고 필드에 나갈 수 있을 정도로 어느 정도의 부유층의 자제들이 그들이다.

그래서 한국골프는 어쩌면 극단적인 두 그룹이 일구어낸 매우 독특한 지층으로 형성된 스포츠 집단인데, 좀 더 자세히 이들을 들여다보면 우리나라의 근현대사와도 일맥상통하는 바가 없지 않다고도 할 수 있다.

필자가 스포츠 기자로 일하던 90년대 초만 하더라도 남녀 프로골프 대회가 남녀 합해도 10개 대회가 될까 말까 하는 정도였다. 이때가 두 부류의 공집합이 나타나기 시작한 시기였던 것으로 보인다. 골프를 어쩔 수 없이 생계를 위해 배운 집단의 대표자들과 부유한 가정의 부모를 만나 아버지의 권유로 골프채를 잡아 두각을 나타내던 주니어들 이들 두 그룹이 골프장에서 조우하던 그런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90년대 우리나라 남자 프로골프는 두 사람이 챔피언을 서로 나누어 가지던 시기였다. 한 사람이 최상호, 또 한 사람은 박남신이었다. 그들 이전에 한장상, 박명출, 김승학 등 걸출한 프로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90년대 들어서면서 남자골프가 최상호, 박남신 양자 구도로 짜여지면서 재미와 관심을 끌면서 화재를 몰고 다니기 시작했다.

여자골프는 국내 무대가 아직 여명기여서 일찍이 일본 무대로 건너간 구옥희를 필두로 한명현, 고우순, 이오순, 이영미 등이 여자프로골프의 초창기 멤버들이었다.

이들 초창기 프로골퍼들은 한결같이 어려운 가정환경과 이를 극복하기 위해 골프와 연이 닿아 골프장에서 캐디로 일하다가 골프채를 잡을 기회가 오자 이를 갈고 샷을 다듬어 프로가 된 경우가 많았고, 여자 프로들도 그런 과정을 거쳐 프로로 전향한 경우가 많았다. 재미있는 것은 이들이 골프를 하기 전에 대부분 배구나 농구 등 다른 운동을 했던 경험자가 적지 않았다는 것이다. 골프가 이런 운동들과는 별다른 연관성이 없는데도 말이다. 어떤 운동도 끈기와 투지가 밑받침이 되어야 한다는 면에서는 연관성이 없다고 할 수도 없겠다.

어느날 골프장에 아버지를 든든한 배경으로 골프를 익힌 주니어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기존의 잠잠하고 조용한 골프계에 파란이 일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먼저 여자골프계에서 불기 시작했다. 박세리를 필두로 강수연, 한희원, 김미현 등이 그들이고 미국에서는 그레이스 박으로 알려진 박지은이 그들이었다.

이들은 우선 우월한 체력을 바탕으로 어려서부터 제대로 체계적인 레슨을 받았고, 전 세대 프로들이 눈치를 보며 자투리 시간에 샷을 다듬었던 데 비해 이들은 겨울에는 태국 등 따뜻한 나라에서 전지훈련을 다니기도 했고 미국이나 일본 등 골프 선진국으로 투어를 다니기도 했던 안정된 조건에서 골프를 했던 신세대 골퍼들이었다.

그러니 도토리 키 재기였던 전 세대 골퍼들과는 완전히 다른 경쟁력을 갖춘 골퍼들이 나타난 것이다. 중학생, 고등학생 박세리가 나타나면 기존의 프로골퍼들이 같은 조에서 플레이하기를 꺼릴 수밖에 없었던, 차마 웃지 못할 일들이 벌어지곤 했던 것이다. 경기력에서 기존의 프로들을 완전히 압도할 정도로 준비된 골퍼들이 나타난 것이다. 이들은 향후 미국으로 건너가 LPGA 무대를 완전히 한국판으로 만들어 버린 바로 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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