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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경관의 경계 허물고 창의와 가능성 입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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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은 참으로 분주한 도시다. 그 기점을 1407년(태종 7년)으로 보면 어떨까. 그 해는 남해안에서 약탈을 일삼던 왜인들에 대한 회유책으로 조선정부가 부산포와 내이포(진해)에 왜관(倭館)을 처음 열었던 해였다. 이후 450여년의 시간은 왜와, 19세기 중반 이후에는 일제와 복잡한 관계를 이루며 부산은 근대식 도시로 탈바꿈했다.

 
1945년 해방에 연이은 전쟁은 부산을 또 다른 성격의 도시로 나아가게 했다. 독립운동 강제동원 등 여러 이유로 조국을 떠났던 수많은 귀국동포들이 부산항으로 귀환했고, 한국전쟁 중부산은 1023일 동안 피란수도로 기능하며 국난 극복이라는 특별한 임무를 담당했다. 특히, 부산항은 전쟁을 역전시키고 대한민국을 구했던 으뜸의 공로자가 되었다. 그러나 부산은 1970년대 까지 전쟁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전쟁이 끝났는데도 떠나지 못했던 60여만의 피란민들은 부산사람이 되었고, 결과적으로 부산은 수용력의 세배 이상을 초과한 초고밀의 도시가 되었다. 그래서 부산은 생존을 위해, 마치 용광로와 같이 끓어오르는 도시가 되고 말았다. 


먹고 살기위해 선택한 수출업, 그것의 담당은 온전히 부산항 몫이었다. 항구와 내륙을 잇기위해 각종 고속도로와 고가도로들, 터널과 교량들이 건설되었다. 땅과 연안이 가진 조건은 몰인식 된 채, 그저 국가 번영과 경제 발전만을 위한 주장과 조치뿐이었다.

 
결국 부산은 대한민국의 재건에 희생된 채, 수 없이 많은 상체기를 안게 되었다. 그 중 가장 큰 상체기는 일제 침탈, 해방과 전쟁, 밀려든 산업화와 도시화에 짓눌려 스스로의 쇄신과 혁신의 기회를 갖지 못한 점인 듯싶다. 기회가 있었지만 그것의 대상이 외연 확장과 도시개발에만 머물렀기에 효과가 미미하고 미흡했다. 


시간이 흘러, 탈산업화를 논하는 시대가 되었다. 부산은 우리나라 탈산업화의 중심에 서 있다. 전쟁 후 70여년의 시간 속에서 쌓아 온 산업화의 기반을 딛고 뛰어 도약해야 할 시점에 도달한 것이다. 부산의 탈산업화는 다양한 학제 간 논의를 요청한다. 공학이나 경제학을 벗어나, 인문과 사회학 그리고 역사학과 지리학을 아우르는 포괄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하겠다.

 
이러한 논의 중, 오늘은 탈산업화의 기로에서 산업화시대가 남긴 공간적 물증들을 즐겁게 바라보는 방법을 고민해 보려한다. 1980년대 초반 경, 탈산업화 시대를 앞서간 국가들을 중심으로 산업화 시대의 역할을 마친 시설들과 장소들에 대한 재평가가 시작되었다. 죽어가던 시설과 풍경들에 역사적인 토목인프라, 후대에 남겨야 할 산업경관, 창의적인 재활용이 가능한 산업유산 등의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부여했다. 심지어 유네스코에서는 이런 곳들을 세계유산으로 등재를 본격화했다. 교량, 공장, 창고, 부두, 고가철교, 조선소, 광산, 수로 등 다양한 유형의 시설들과 풍경들이 신기운으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경향은 1990년대 들어,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Landscape Urbanism)’이란 이론과 결합되며 날개를 달기 시작했다. 상상력의 빈곤과 제한된 관계가 근대도시를 대변한다면,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 관점에서의 미래도시는 유기체적인 생태학적 관계, 즉 열린 과정 속에서 다양한 물성들의 융합적인 관계를 중시한다.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에 있어, 기능 잃은 인프라스트럭처(infra-structure)는 최고의 아이템으로 평가된다. 단순 기능을 수행했던 산업시설들과 장소들이 다양한 도시문제와 사회문제, 그리고 지역경제의 얽힌 여러 문제를 해결하는 매개체로 전환된다.

 
부산은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 이론과 잘 어울리는 도시다. 아니 최적화된 도시다. 19세기 후반부터 지금까지 150여년의 시간 속에서 탄생된 각종 인프라스트럭처들과 그곳들에 결부되어 형성된 경관들은 근대도시이자 산업도시로서의 기능을 마치려 하는 부산에 이전에 경험치 못했던 특별한 정체성의 원천을 제공할 것이다. 삼포도시 부산의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기능을 다한 인프라스트럭처들의 공존과 결합은 경제물건으로만 이해되는 경직된 부산 경관의 경계를 허물어 창의의 기회와 가능성을 열어 줄 것이다. 분명 도시 곳곳에서 강력한 스파크가 튈 것이다.

 
이제 부산그린트러스트는 그 스파크를 아니, 부산의 즐거운 미래를 시민들과 함께 상상해보려 한다. 국가 수호와 재건에 바탕을 제공했지만, 수명을 다해 곧 버려질 처지에 놓일 부산의 인프라 스트럭처들 그린과 생명을 덧입혀 보려한다.
 

강동진(경성대 도시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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