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rrent Date: 2024년 05월 03일

기고

여성골퍼를 위한 김주태 기자의 골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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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리 부녀에게 찾아온 뜻밖의 행운은 삼성이라는 국내 굴지의 기업이 후원을 자처하고 나선 것이다. 삼성은 당시로서는 상당히 큰 금액인 7억 원 정도를 박세리 후원금명목으로 전달한 것. 아직 아마추어 신분이었던 박세리에게 삼성이 요구한 것은 거의 없었다. 그저 삼성 로고가 붙어있는 모자를 쓰고 대회에 참가해 달라는 정도였으니 어쩌면 삼성에서 박세리에게 후원금을 주기로 결정한 것은 정말 순수한 지원금 수준의 장학금이나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었다.

이 돈이 박세리를 세계적인 스타로 키우는 시드머니가 되었다. 아버지 박준철은 이 돈으로 골프 8학군으로 불리는 분당에 아파트를 한 채 마련해 박세리가 인근 골프장으로 다니는 것을 편리하게 하는 한편, 나머지 돈으로는 플로리다에 있는 데이비드 레드베터 골프스쿨에 보내 여기에 적을 두고 그동안 국내에서 받아보지 못한 본격적인 박세리 조련 프로그램을 시작할 수 있었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당시 박세리가 데이비드 레드베터에게 사사 받을 때, 레드베터는 우선 박세리에게 스윙 아크를 줄일 것을 주문했다고 한다. 특히 드라이버를 칠 때 파워를 내기 위해 오버스윙에 가까운 커다란 스윙 아크를 줄이라고 명했다. “너 드라이버 참 잘 친다. 그렇지만 그렇게 드라이버를 계속 치면 몇 년 못가서 너는 투어를 뛸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크게 휘두르면 체력소모도 많고 정확성도 떨어진다. 투어는 장기 레이스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면 시작도 하기 전에 끝난다.” 박세리는 장기인 드라이버 거리를 줄이는 대신 드라이버의 정확도를 크게 높였다. 덤으로 체력도 비축할 수 있었고...

19971년 동안 플로리다의 새로운 선생 밑에서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트레이닝을 받은 박세리는 이듬해 미국 LPGA에 정식으로 데뷔해 루키로 투어에 뛰어들게 된다. 1998년은 우리나라에게는 역사적으로 뼈아픈 해였다. 외환이 바닥이 나는 바람에 IMF 구제금융을 받아들여 정부도 민간에서도 달러가 될 만한 것은 모두 가져 나와 팔던 시기였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우리 국민들의 금 모으기 행렬이 전 세계 매스컴을 장식할 바로 그 때였다.  

온 국민이 상심하고 사지에 맥이 풀려있을 때 난데없이 미국에서 낭보가 전해지기 시작했다. 박세리가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미국 프로무대의 가장 권위 있는 대회 중의 하나인 US오픈을 차지한 것이다. 그것도 가장 극적인 장면을 연출하면서 당시로서는 하나의 신화를 만들어 낸 것이나 다름없었다. 잇따라 또 다른 메이저 대회인 LPGA선수권 마져 석권하는 등 그 해 모두 4승을 올리며 박세리의 이름을 온 세계에 알렸다. 데뷔 첫해에 한국에서 온 새로운 골프계의 신데렐라가 탄생했음을 알리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이후 삼성과 본 계약을 맺고 삼성 소속 선수가 되어 이미 전 세계에 가전제품과 반도체로 널리 알려진 삼성의 브랜드를 더욱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박세리가 US오픈 당시 대회 4라운드 동안 삼성의 브랜드를 전 세계 시청자들에게 알린 시간과 가치를 계산해 보니 그 가치가 2조원을 상회한다는 삼성의 자체 조사결과가 있었다는 후문이 돌 정도였다. 박세리 부녀는 삼성으로부터 받은 7억 원을 몇 만 배 이상으로 삼성에 돌려준 셈이 되었다. 박세리 부녀의 인간승리가 아닐 수 없었다.         

그 때 TV로 박세리의 멋진 승리를 접하고 감동했던 소위 박세리 키즈들이 현재 미국 LPGA 무대를 휩쓸다시피 하고 있는 한국 여자골프군단이다. 박인비, 유소연, 신지애, 김세영, 고진영, 김효주 등이 그들이다. 박세리 부녀의 승리는 그들만의 승리가 아닌, 대를 이어 한국 골프의 위상을 전 세계에 떨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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