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rrent Date: 2024년 05월 03일

기고

여성골퍼를 위한 김주태 기자의 골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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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복도에서 나는 정체불명의 소리는 문을 열자마자 금방 확인이 가능했다.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여자골프 국가대표 상비군인 박세리가 호텔 복도에 작은 티 하나를 꽂아놓고 퍼팅연습을 하면서 내는 소리였다. “, 세리야! 너 이 시간에 뭐 하는 거니?” 필자의 소리에 그는 얼른 티를 빼고 황급히 볼을 주워들고는 자기 방으로 쏙 들어갔다. 새벽 2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다음날 아침, 호텔식당에서 다들 모여 아침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필자는 박세리가 눈에 들어오자 그에게로 다가갔다. “세리야, 너 누가 밤늦게까지 퍼팅 연습하라고 시켰니?” 약간 당황한 표정으로 주변을 살피더니 박세리는 아주 작은 소리로, 그러나 매우 단호한 어조로, “우리 아빠가요... 다른 애들처럼 먹을 거 다 먹고, 놀 거 다 놀고, 잘 거 다 자면 네가 다른 애들보다 잘 할 수 있는 이유가 뭐냐...특히 퍼팅은 남 잘 때 한 시간이라도 더 해야 한다고 해서...”

이 말을 듣는 순간 필자는 박세리 부녀의 당시로서는 절반의 성공이 이해가 되는 동시에 뒤통수를 한 방 세 개 얻어맞은 것 같은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모든 스포츠가 그렇고 모든 운동선수가 그렇겠지만, 남보다 부지런하지 않고, 남들보다 땀을 더 흘리지 않고 그들보다 더 좋은 성과를, 시상대의 더 높은 자리를 원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건 헛된 바람에 불과하다. 스포츠에서 요행을 바라 수 있나? 땀을 덜 흘린 자가 땀을 더 흘린 자를 이길 수 없는 건 스포츠의 정의다.

아버지는 가혹하리만큼 딸에게 많은 주문을 쏟아내었다. 심신이 건강한 딸은 아버지의 말을 믿고, 한 톨의 의심도 없이 그 주문에 충실하려고 애썼다. 딸은 무럭무럭 자랐고, 아버지는 국내무대가 좁아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 세리가 최고여... 백스핀을 거는 애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 주변에서는 박세리 아버지 박준철에게 그리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밉상이 따로 없었다. 그런 와중에도 어느덧 박세리는 국내에는 대적할 자가 없을 만치 커 있었다.

아마추어와 프로들이 다 같이 출전하는 오픈대회에 나가면 박세리는 프로선수들의 기피 대상 1호가 되었다. 드라이버 샷을 치고 나면 세컨드 샷부터는 아마인 박세리와 프로선수와의 거리가 작게는 20-30m 길게는 50m이상 차이가 나는 게 보통이었다. 그린까지 남은 거리가 프로는 5,6번 아이언으로 세컨드 샷을 쳐야하는데, 박세리는 피칭웨지나 샌드웨지를 들고 있으니 불공정(?) 게임이 아닐 수 없었다. 대전 갈마중학교 3학년 때 이미 박세리는 아마추어와 프로를 망라해 명실상부 국내 1인자로 군림하고 있었다.

대전에 골프부가 있는 골프고등학교가 없어 박세리는 충남 공주시에 있는 금성여고로 유학가게 된다. 금성여고에서 박세리는 착실히 국내 1인자로서의 입지를 더욱 확고히 굳히는 한편, 아버지 박준철은 박세리의 다음 무대는 국내가 아닌 해외무대가 될 것으로 생각하고 이왕이면 여자골프의 꿈의 무대라고 할 수 있는 미국 LPGA 무대를 염두해 두고 그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국내 선수가 미국 LPGA 무대에서 성공할 것으로 믿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아무리 국내 1인자 박세리라고 해도 10년 안에 1승이라도 거두면 다행이지...이런 생각이 주류였다.

이때 뜻밖에 행운의 소식이 박세리 부녀에게 찾아오게 된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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