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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글로벌 여성 지도자 '앙겔라 마르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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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출판 및 미디어기업을 비롯한 유명한 경제잡지인 포브스(forbes)에서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1위에 연전 앙겔라 메르켈이 선정되었는가 하면 2015년에는 타임(Time)지가 선정한 인물로 크게 부각되었다. 그는 독일의 제8대 연방총리였고 2005년부터 2021년말까지 독일 최초의 여성총리로 만 15년동안 재임하였다.

그는 총리가 되기전까지 일단 동독(독일민주공화국)출신이다. 그리고 그의 아버지는 베르린교회 출신의 루터교회 목사였고 어머니는 함부르크출신의 영어교사였다고 한다. 그의 주요 경력으로는 헬무트 콜에게 발탁되어 1991년부터 1994년까지 최연소 여성 청소년 장관을 지내기도 하였다. 잘 알려져 있는대로 독일에는 기독민주당(COU), 독일과 유럽을 변화시킨 기록적인 최초의 여성 총리였다. 그는 만15년간 총리수행을 하면서 하원의원 7, 연방의회선거 4회 승리등 오랜기간 여성리더로서 훌륭한 정치인이었다.

 메르켈은 사회주의 국가와 기독교적 가치관사이에서 어린시절을 보내고 명문 라이프치히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하게되는데 그 동기는 당시 동독지도부가 대학에서 자연법칙(Naturgesetz)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는 매우 호의적이었다고 한다. 이후 메르켈은 독일사회주의 통일당으로부터 입당권유와 반체제 인사감시와 탄압등을 주로 임무로 하는 슈타지(Stasi)”, 즉 당시 국가 안전부의 협력을 거부했다. 동독출신정치가 중 상당수는 슈타지와 어쩔수 없는 협력관계에 놓여져 있었고 이와같은 사실은 통일후 독일사회에 그대로 노출되기도 하였다. 당시 독일국민들은 슈타지에 협력한 정치인들에게 거부권을 행사하였고 이들은 사회적으로도 매장되는 신세가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메르켈의 정치적 결단은 후에 동독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경력에 불이익이나 손상을 받지않고 통일 독일의 정계에 성공적으로 우뚝서게 되었던 것이다. 드디어 198910월경 메르켈은 민주주의 각성”(Demokratischer Aufbruch)에 적극 가담하면서 적극적으로 정치활동을 전개하게 된다. DA는 민주주의 사회질서를 옹호하는 동독의 정치적 바대세력의 일부로 등장한다. 결국 19908DA는 구 동독최고 인민회의에서 CDU(독일의 기독민주당)와 의회그룹을 형성하고 199010월 서독CDU와 합병하게 된다. 이때 메르켈은 동독의 메지에르(Maiziere) 정부아래 대변인으로 활동하게되었고 비로소 독일 통일과정에 긴밀히 동행하게 되었다.

199036세의 최연소 하원의원에서 19911월 헬무트 콜(Hemut-Kohl)내각에서 여성, 청소년 장관으로 발탁되기까지 그는 승승장구하였던 것이다. 당시 콜은 과거 동독정권과 협력하지 않은 전 동독출신의 정치인을 필요로 하였고 이와같은 이유로 인하여 콜은 통일 독일에서 메르켈에게 장관적을 직접 수여하게 이르렀던 것이다. 다소 경험이 부족한듯한 메르켈은 동독 정치인으로서 할당량이 아닌 자신이 적합하고 나아가 기여할수 있다는 것을 매우 빠르게 증명하면서 자신의 역할을 성공적으로 이루어 내게 된 것이다.

1998년 그는 CDU사무총장으로서 정상에 올랐고 콜과 총리와는 깊은 인연으로 콜의 소녀(Kohls Madchen)”라는 별명을 얻기도 하였다. 그러나 메르켈은 1999년 당시 비자금 스캔들로 인하여 콜총리와 작별하게 된다. 당시 메르켈이 독일의 유력지인 프랑크푸르트 신문(FAZ)에 기고한 내용을 보면 자신의 당에 늙은 군마가 존재하며, 늙은 군마없이 정치적 반대세력과 싸움을 시작하라, 늙은 군마는 당에 해를 끼쳤고 미래는 진정한 토대위에서만 건설될 수 있으며, 당은 이제 걷는 법을 배워야한다고 요청하였다. 이 얼마나 용기있는 결단이었는지는 당시를 상상해볼 수 있다. 메르켈은 독일 총리로서 임기를 시작한 2005년부터 2010년까지 2008년 경제 위기를 제외하고는 다행히도 그다지 큰 위기를 격지않은 셈은 그의 행운이기도 하였다.

러나 2011년 아랍의 봄을 기점으로 유럽주변에는 크고 작은 위기가 도래한 것이다. 예를들면 브렉시트를 비롯하여 터키 에르도안 정부의 급격한 친동구권 독재정책의 패단등으로 대외적인 정치적 위기를 해결해야하는 매우 어려운 상황을 가져오기도 하였다. 그중 가장 큰 어려운 문제로 꼽히는 것은 난민문제로 그는 도덕적이고 인도적인 행동으로 난민을 수용하면서 엄마의 리더쉽이라는 칭호의 찬사를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계속적으로 장기화된 내전으로 인하여 지속적인 난민의 속출은 당과 국가를 매우 어렵게 하였고 결과적으로 우익의 세력을 확대하는 불운을 낳게 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메르켈의 능력은 항상 합의를 이끌어 내는데 주저함이 없었고 타고난 성품대로 항상 과묵하고 인내성을 견지하는데 모자람이 없었으며 그는 언제나 상대의 다른의견을 존중해 왔으며 협치와 조율에 혼신의 힘을 기울여 온 결과 성공한 글로벌 여성 정치 지도자로서의 성공을 거두게 된 것이다. 그는 작년 122일 베를린에서 열린 연방군의 열병식에 참여하여 당년 67세의 나이로 16년간의 임기를 마치고 퇴임한 그는 총리로서 사실상 마지막 연단에 올라 증오와 폭력 그리고 가짜 정보를 지키기위한 투쟁에 나서달라고 촉구했다.

                                                                                              [2022년 2월 25일 141호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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