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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메이지유신 150주년, 그 발상지 야마구치를 가다

11-1 야마구치.jpg 11-1-2 야마구치 죠후 성하마을.jpg    요시다 쇼인이 메이지유신의 인재들을 길러낸 쇼가손주쿠(松下村塾)                   메이지유신의 시작점인 일본 야마구치 죠후 성하마을

일본인들이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 는 역사가 메이지유신이라고 한다. 특히 야마구치 출신들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메이지유신을 통해 에도막부 하에 300개 가까운 번으로 나누어져 막부의 쇼군과 번의 다이묘들이 정치의 중심을 이룬 봉 건체제를 천황과 관료가 중심이 되는 부 국강병의 중앙집권 국가를 만든 것이다.

우리에게는 혹독한 시련이기도 한 일제 식민체제와 군국주의는 그 부작용이기 도 하다. 금년은 1868년 메이지유신이 일어난 지 150년이 되는 해로서 그 발상지로 일 컫는 조슈번 현재의 야마구치현에서는 가는 곳마다 기념 포스터들이 유난히 눈 에 띈다.

야마구치 출신의 현직인 아베총 리가 3선 연임에 성공함으로써 야마구치 현 사람들은 더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메이지유신 150년을 맞아 일본역사 기 행이라는 이름으로 부관페리로 야마구 치를 금년에 세 번 다녀왔다.

부산과 시 모노세키를 잇는 부관페리는 밤에 출발 하여 다음날 아침에 도착하므로 잠을 자 면서 단체가 어울리며 여행하기에 좋다. 배안에서 목욕도 하고 단체 회식도 하면 서 잠자고 일어나면 도착하니 시간, 경비 면에서도 유리하다.  

2월 말, 3박 2일(밤에 출발하여 아침에 도착하고 배에서 이틀, 일본에서 하루 숙 박하므로)로 49명이 49인승 버스를 타고 야마구치의 하기와 호후 일대를 다녀왔 다. 10월초에는 1인당 22만원 경비로 2 박 1일로 36명을 인솔하여 아침에 시모 노세키항에 도착하여 야마구치 꽃박람 회장에 갔다가 청일전쟁기념관, 아카마 신궁 등을 둘러봤다.

항구로 돌아와 짐을 풀고 근처에서 간단한 쇼핑 후에 18시에 승선하여 다음날 부산항에 도착했다. 10 월말에는 1인당 38만원에 25명을 인솔 하여 3박2일로 꽃,온천,역사,단풍을 테마 로 꽃박람회장, 하기의 곳곳을 다녀왔다. 물론 인솔자로서 경비 면제에 약간의 수 당도 받는다.

부산항에서 18시 승선하여 다음날 8시 반 경에는 시모노세키항을 빠져나와 예 약된 버스를 타면 그날의 여행일정이 시 작된다. 야마구치현 시모노세키시는 인 구 27만의 작은 도시이지만, 100년이 넘 은 부관페리로 부산과 연결되는 관문도 시로 우리나라와는 역사적으로 관계가 깊다.

항구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아카마 신궁과 바로 옆에 청일전쟁기념관이 큐 슈와 혼슈를 가르는 좁은 해협인 간몬해 협을 바라보고 있다. 아카마신궁은 비극적으로 죽은 안토 쿠천황을 위령하기 위해 지은 신궁이다.

12세기 천황승계를 둘러싸고 권력투쟁 이 격화하면서 무사집단 간의 전쟁으로 번져 平(다이라)가와 源(미나모토)가의 싸움에서 1180년 平가가 주도권을 쥐었 으나, 결국 간몬해협에서 벌어진 단노우 라해전에서 源가가 승리한다. 그동안 천 황이 쥐던 정치권력이 무사들의 힘이 커 지면서 무사집안의 우두머리였던 다이 라 기요모리는 외손자를 천황으로 삼으 며 권력을 좌지우지 했지만, 단노우라해 전에서 미나모토군에게 밀려 패해 다이 라가는 멸망하게 된다. 

이때 8세의 안토 쿠천황은 기요모리의 부인이자 외할머 니의 손에 이끌려 바다에 뛰어들어 자살 하게 된다. 다이라를 물리친 미나모토 요리토모는 천황을 무시하고 도쿄 아래에 있는 가 마쿠라에 막부를 설치하고 정이대장군 이라는 이름으로 정치권력을 장악하여 본격적인 무사정치 시대를 연다.

가마쿠 라막부에 이어 무로마치막부, 전국시대 를 거쳐 에도막부가 멸망하는 메이지유 신까지 약 700년간 천황은 명목상으로 남게 된다.  바로 옆에 붙은 청일전쟁기념관은 1894년 동학농민전쟁으로 조선 권력층 이 위기에 빠지자 청나라 군대를 불러들 여 동학군을 진압하려 하자 일본군들이 텐진조약을 들어 조선에 들어와 청일전 쟁으로 확대되었다.

결국 일본이 승리하 여 청나라의 리홍장이 시모노세키로 건 너와 일본의 이또 히로부미와 조약을 체 결하게 되었다. 그 역사적인 자리가 일본 식 표현으로 일청강화기념관이다. 시모 노세키조약에 의거 조선의 지배권을 일 본이 장악하고 제국주의 열강으로 나아 감으로써 우리로선 아픈 역사가 시작되 게 된다.

시모노세키항에서 1시간 거리의 야마 구치시 해변가의 넓은 키라키라 공원에 서 열리는 메이지 150주년 기념 꽃박람 회장을 찾았다. 10월 3일 찾았을 때는 현 아키히도천황의 둘째 아들인 아키시노 미야황자 부부가 참석하는 기념행사가 있어 많은 구역이 경호를 위해 통제가 되었지만, 직접 황자 부부를 눈앞에서 볼 수 있었다.

황위 서열 두 번째로 일본 국 민들에게는 존경과 사랑을 받는지 자리 했던 많은 일본인들이 열광하는 모습을 보았다. 내년 5월 아키히도천황이 큰 아 들인 나루히토 황자에게 양위하면 서열 1번으로 올라가는 귀하신 몸이다.

정치적 실권은 없지만, 일본국민 통합의 상징 으로서 국민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작다 고 할 수 없을 것이다. 2월말과 10월말에는 메이지유신의 발 상지라 할 수 있는 하기를 찾았다. 하기 에는 메이지유신 관련 인물이 많이 나오 는데  첫 번째 인물로 요시다 쇼인이라는 선각자가 쇼카손쥬쿠라 부르는 자그만 서당에 젊은 애들을 모아 존황양이 사상 을 가르쳤다.

막부로부터 오래동안 차별 을 받아온 죠슈번의 하급무사인 쇼인은 막부를 없애고 천황을 국본으로 모셔서 부국강병을 꾀해 장차 대륙으로 나아가 야 한다고 어린 제자들에게 설파하며 깊 은 애국심을 심어 주었다.

그의 과격한 사상으로 29세에 막부에 의해 처형을 당 하지만, 장차 일본을 이끌게 되는 어린 제자들 중에는 이또 히로부미, 구사카 겐 즈이, 다카스기 신사쿠, 이노우에 가오루 등이 있다. 쇼카손주쿠에서 바다 쪽으로 향하면 메이린학사, 하기박물관이 나온다.

메이린학사는 초등(소)학교를 만들기 전에는 하기번의 관료들의 자제들이 다닌 학교 터였는데 1930년대부터 소학교로 활용 하다 몇 년 전에 부근으로 이전하고 메이 지유신 150년을 기념하여 작년 3월에 개 장했다. 목조 건물의 원형을 살리고 내부 를 리모델링하여 메이지 전후의 유물을 전시한 박물관이라고 할 수 있다. 

하기박물관은 하기와 관련한 자연, 역 사, 민속, 산업, 미술공예 등에 관한 자료 를 수집,보관 전시하고 있다. 상해 견학 을 통해 양이가 아닌 개방을 주장했던 다 카스기 신사쿠 관련 자료도 많이 전시되 어 그의 굵고 짧은 생애를 소개하고 있 다. 하기박물관 인근은 하기 성하마을로 근대 일본 무사 마을의 모습을 그대로 재 현하여 많은 관광객들로 하여금 메이지 시대의 분위기를 느끼게 해준다.

끊임없이 우리와 불편한 나라, 그렇지 만 우리를 둘러싼 사대 강국의 한축으로 무시할 수 없는 일본, 그들의 실상을 알 고 잘 대처하기 위해서도 일본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 이번 여행을 통해 많은 사 람들이 일본의 역사를 이해하는데 도움 이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김영춘 기자

(부산한일친선협회 부회장)

[20181226일 제1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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