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휩쓸고 있는 한류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한국문화의 컨텐츠는 ‘흥’과 ‘인간애(Humanntiy)이다. 우리는 흥이 많은 민족이다. 920여 차례에 달하는 외침(外侵)을 당하면서도 꿋꿋하게 민족의 역사를 이어온 원동력은 눈물과 한숨 속에서도 서로를 보듬는 따뜻한 인간애와 흥을 잃지 않았던 조상들의 정신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늙어지면 못노나니...’라는 노래에서 보듯이 우리는 노는 것을 무척 좋아하는 민족이다. 이 ‘놀음’은 방탕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조상들만큼 부지런한 사람도 드물 것이다.
어느 민족, 어느 나라 사람보다 더 열심히 땀을 흘려 일했고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분들이 우리의 조상들이다. 국난을 당할 때마다 임금이나 사대부들이 제 목숨 부지하기에 급급하여 피난 봇짐을 쌌을 때에도 끝까지 이 땅을 사수했던 사람이 바로 이름 없는 백성들이었다.
그들은 뼈를 깎는 아픔을 견디며 일했고 피를 흘려 이 땅을 지켰다. 이러한 고통을 견디게 한 것이 바로 흥으로 표현되는 신바람 놀이문화가 아닐까? 이 신바람이 없다면 어떤 일에도 능률이 오를 수 없다.
가수 싸이가 소나기를 맞은 듯 땀을 흘리면서도 관중과 세계인을 즐겁게 한 것도 바로 신바람으로 불리는 흥의 문화이다. 싸이에게 일을 한다는 것은 바로 노는 것이다. 누구든 싸이처럼 일을 할 때 놀듯이 한다면 일 자체는 얼마나 신바람 나겠는가.
공자, 노자도 중요하지만 ‘놀자’는 더 중요하다. 잘 놀아야만 창의력도 생기고 재생산을 위한 인프라(Infra)도 생기는 법이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고 나는 놈 위에 노는 놈 있다’는 신(新)속담도 있다.
우리의 놀이문화 중에서 대표적인 것을 꼽으라면 마당놀이를 들 수 있다. 마당놀이는 말 그대로 마당에서 펼치는 놀이이다. 무대와 객석, 연기자와 관객의 구분이 없다. 출연자와 관객이 한데 어우러지는 신명나는 놀이가 마당놀이이다.
배우가 대사를 하면 관객들은 ‘얼쑤!’하며 추임새를 넣는다. 그러니 모두가 마당놀이의 주인공이 된다. 이것은 우리 민족만이 갖는 가장 독특한 ‘우리’라는 문화이다. ‘우리’란 ‘울’ 혹은 ‘울타리’에서 그 어원을 찾을 수 있다.
울타리 안에 있는 사람은 바로 가족이다. 이 세상에서 가족만큼 따뜻하고 정감이 넘치는 존재는 없다. 그러니 ‘우리’는 바로 가족 공동체를 의미한다. ‘우리’라는 가족 공동체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 민족은 예나 지금이나 정이 많을 수밖에 없다.
오늘날 오도(誤導)된 서구의 물질문명과 배금주의로 인하여 그 가치가 많이 훼손되었긴 했으나 그래도 우리는 조용필의 노래처럼 ‘정에 살고 정에 울며 살아온...’ 민족이다. 수 년 전, 세계를 휩쓸었던 연속극 ‘대장금’이나 ‘허준’ 같은 드라마는 다른 나라에서 볼 수 없었던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한 드라마였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
올 하반기부터 방영하고 있는 ‘사임당’도 인간애를 바탕으로 하고 있어 또 한 번 세계를 가슴 뭉클하게 한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문화를 향유한다는 데 있다. 이러한 문화는 외국인관광객을 불러 모으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잘 만들어진 드라마 한 편은 그 자체만으로도 큰 수확이지만 그에 따른 시너지 효과는 더욱 큰 것이다. 다만 영화나 드라마 속의 아름다운 한국이 현실에서도 재현될 수 있도록 국민 모두가 노력,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진정한 문화강국 코리아를 체험하는 게 바람직하다.
안타까운건 최근 중국이 한류확산을 막기 위해 강경책을 내놓고 한류스타들의 방송 출연과 공연을 금지하고 있어 때아닌 된서리를 맞고 있지만 한국의 탄탄한 문화 콘텐츠는 어느 나라 어느 수용자들도 외면하지 못할 것이라는 확신이다.
문화생산자들의 분발과 한류문화정책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 모두가 노력을 기울었으면 한다.
[2016년 11월 23일 제82호 3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