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대단한 사고를 쳤다. 한국영화 100년 역사 속에 1962년 신상옥 감독의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가 아카데미에 처음 출품한 이후, 아카데미4관왕 석권이라는 쾌거를 이루는 역사를 만들어냈다.
언어의 장벽을 넘어 비영어권 영화 최초라는 의미에서 전 세계 영화 역사를 새로 쓰는 기적을 이루었다. 영화 “기생충”의 기적 같은 4관왕 수상 소식은 우리 모두를 놀라게 했다. 지난 2월 9일 미국할리우드에서 열린 제 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장편영화상 등 4개 부문의 상을 거머쥔 것이다.
처음 국내에서 개봉되었을 때 한국사회의 양극화 현실을 실질적으로 구김없이 그려낸 좋은영화로만 알았지, 이렇게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홈런을 칠 줄은 정말 몰랐다. 아카데미 시상식은 1929년 할리우드에서 시작한 미국 최대 영화상(賞)으로 영화인이면 한번쯤 받고 싶어하는 상이다. 회원 8,400명이 투표로 수상자를 결정하는데 91%가 백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 연유로 비영어권에서는 수상의 기회가 거의 전무한 상태였다.
그동안 백인들의 잔치로변모하여 편향된 인종차별이란 오명이 있었고, 할리우드 지역 축제라는 비아냥거림을 받아왔지만 이번에는 확실히 달랐다. 이번 기생충의 4관왕 수상에 대해 세계적 찬사가 이어졌고,모두가 함께 들뜨고 기뻐했다.
특히 봉준호 감독의 수상소감에서는 특유의 여유와 재치가 돋보였고, 세계인을 매료시켰다. 그중에서도 언어의 천재성을 유감없이 발휘한 대목은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조적이다”고 말 한 후 같이 후보 상으로 오른 거장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에게 기립박수를 넘기는 재치 있는 여유로움을 보여준 대목이다.
그뿐 아니다. 이번 수상의 영광 뒤에는 이를 지원하는 CJENM의 이미경 부회장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의 사촌 누님으로 막후에서 기생충 영화를 전세계 영화평론가들에게 알리는데 많은 역할을 했다는 외교력도 화제가 되고 있다.
삼성가에서 한쪽은 반도체와 모바일 IT기술력으로 세계를 휘어잡고, 다른 한쪽에서는 한국의 문화콘텐츠로 세계를 놀라게 했다. 그들이 홍보비 100억원이라는 과감한 지원과 결단을 하지 않았다면 이같은 쾌거를 이루어낼 수 있었을까. 감독과 배우 각본과 탄탄한 연출 구성, 재정지원 등 이 모든 것이 조화를 제대로 이루었기에 가능했다.
다시금 환상적 조합에 박수를 보낸다. 그런데 “기생충” 영화를 통해 필자는 제작자의 의도를 읽어보고자 한다. 영화를 통해 우리에게 무엇을 남기려 하는가 하는 것이다. 단지 이분법으로 양극화를 비난하고 사회의 모순성을 고발하는 내용으로 보아야 할지, 아니면 한국의 현실에서 반지하방 생활자들이 막연히 뜰이있는 강남의 집을 기대하며 해뜰 날을 기다려야 하는 것인지...
이같은 현실앞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남을 속이며 사기를 치고 목적을 쟁취하는 것이 잘 사는 것인지 묵시적 방법을 제시하는 것인지 궁금해진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보여 주려는 것은 부잣집 지하벙커에 숨어들어 기생하고, 그들의 둥지에서 거짓 신분으로 직업을 구해 벌어먹고 사는 신세이지만, 그것이 통용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더 잘난 신분의 앞 가정교사나 운전기사들보다 이들이 더 신뢰받고 능력을 인정받는 아이러니. 영화 기생충은 빌붙어 공생 공존하는 인간의 상호관계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 한 편으로 지하 벙커에서 언젠가는 저택의 주인이 자신이 될 날을 꿈꾸며 끊임없이 보내는 신호는 신분상승을 꿈꾸는 현대인들의 욕망을 대변하는 것은 아닐지.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인간은 동일한 조건하에서도 우열이 나누어지고, 잘 사는 자와 못사는 자가 공생공존한다. 우리나라도 예외 없이 국민의 20%는 한달 소득이 900만 원이 넘고, 하위 20%는 180만 원 미만으로 무려 5배가 된다. 여기서 영화는 빈곤의 상징인 반 지하와 저택간의 시각적 대비로, 우리가 사는 곳 어디서라도 그곳에는 항상 문제가 있음을 단면으로 보여준다.
[2020년 2월 24일 제121호 1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