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동래 중앙로 8차선 대로변 육교에 “오늘 부모님께 전화 드렸나요?”라는 현수막이 오고가는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있다. 부산불교 방송에서 부착한 홍보간판으로 5월 가정의 달을 보내는 시민들에게 잊혀져가는 우리사회의 “효 운동”을 독려하는 글귀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 ‘배금만능시대’가 도래하여, 돈앞에 노예가 되어 자기를 낳아주신 부모들마저 학대하는 악한 시대가 되고 있다. “효도하라”고 말하는 자체가 겁이 나는 세상이다. 간혹 신문지상에서 가슴을 쓸어내리는 자녀들의 부모에 대한 행패는 자식이 아니라 원수가 되어, 힘없는 부부를 학대하고 유기하는 뉴스 보도를 보면 섬뜩하기 조차하다.
노인학대의 80%는 가족들이다. 아들, 며느리를 포함한 가족들이 부모를 잘 모시지는 못할망정, 심지어 “빨리 안 죽고 우리를 왜 못 살게 하냐” 며 독설을 내뿜는 통에 죽고만 싶다는 노인들이 부지기수다. 요즈음 부쩍 살기가 더 어려워지면서 가족간 대화는 더욱 단절되고 가족구성원들간에도 살기 어린 눈초리속에 부모들이 눈치를 보며 살아가는 세상이라고 한다.
옛날 고려시대, 하루 끼니를 해결하기가 어려워 70된 부모를 버리기 위해 지게에 태워 깊은 골짜기에 내려놓고 돌아서려는 즈음, 어머니의 애정어린 한마디가 떠오른다. “얘야, 날이 어두워 길을 못 찾을까 해서 내가 오면서 나무를 꺾어 두었으니 그리로 따라 가거라.” 자기를 버리고 갈 아들일 망정 자식걱정이 앞선 부모의 마음을 누가알까? 극한 상황에서도 자식 생각을 먼저하는게 부모의 마음이다.
2008년부터 장기요양제도가 생겨 우리 어르신들이 신체적 상태가 좋지 못할 경우 시설에서 지낼 수 있는 복지제도가 있다. 현재에는 전국 5,200여개 요양원에 35만여 명이 입소하여 집을 떠나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다. 가정에서 부모를 부양하는 자녀 들이 시설에 맡겨두고, 직장생활을 자유롭게 할 수 있으니 참 좋은 세상이다.
그런데 시설에 부모를 맡기고도 자주 찾지 않는 자식들이 많다. 적어도 한 달에 몇 번 정도는 면회를 통해 부모의 안부를 묻고 대화를 나누며 건강을 돌봐야할 자식들이만 실상은 그러 하지를 않다.자기들은 가족과 함께 주말휴가 다 즐기면서 가족들과 고립되어 외로이 지내는 부모를 나몰라라며 마치 고려장 하듯이 내팽개치는 자녀들이 있음에 한심스럽다.
더욱이 한 달에 지불하는 40여만 원의 본인부담금을 은행지로로 보내고 자기 임무를 다한 양 찾아오지를 않는자식들도 많다. 현대판 고려장(高麗葬)에 다름 아니다. 성경에도 “너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장수하리라” 하고, 공자께서도 “효는 인간 삶의 근원이라” 하였으며, 석가모니도 “효는 부처가 되는 지름길이다”고 가르치고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부모에 대한 은덕을 강조하고 있음을 돌이켜봐야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식들을 걱정하며 한통의 전화가 기다려지는 어르신들이 있다. 수 백만원의 용돈보다 부모 안부를 걱정하는 정성스런 자식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게 효의 시작이다. 오늘이 가기 전 부모님이 살아 계시다면 한 통의 전화를 걸어보자.
[2019년 5월 23일 제112호 1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