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방송 현장의 현역으로 일할 때 ‘유엔기념묘지’ 일대를 ‘부산평화기념광장’으로 만들어 ‘자유평화박물관’이나 ‘전쟁기념관’ 등을 건립하여 후세에 전할 것을 여러 차례 제안한 바도 있다. 부산광역시 서구 부민동 비탈진 언덕에 ‘임시수도 기념관’이 있고 구(舊) 경남도청 앞거리가 ‘임시수도 기념거리’로 지정된 것은 초라하나마 임시수도 부산을 말해주고 명맥을 이어가는 실낱같은 희망이기도 하다.
‘임시수도 부산’의 위대한 역사에 대한 보존관리와 기념사업은 부산시 차원에서가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 추진되고 계승 발전됐어야 한다. 이를 소홀히 한 국가와 중앙정부 위정자들의 무관심한 역사인식을 성토하지 않을 수 없다. 부산은 3명의 대통령(김영삼, 노무현, 문재인)과 5명의 국회의장(곽상훈, 박관용, 박희태, 김형오, 정의화)을 배출했다. 그 누구 하나 ‘임시수도 부산’의 위대한 역사를 소중하게 조명하고 깊이 생각한 지도자가 없었음이 원망스러울 따름이다.
임시수도 부산 당시 정부종합청사였던 경남도청건물과 국회의사당이었던 경남도청 경내 무덕관(武德館)은 대한민국 역사에 기록으로 남겨야 할 만한 국가적 유산이다. 특히 임시국회의사당은 헌정사(憲政史)의 기념비(紀念碑)적 자산이다. 전란(戰亂)의 위기에서도 자유민주주의를 숭상하고 민의(民意)의 전당(殿堂)인 국회를 운영한 사실은 참으로 자랑스런 역사가 아닐 수 없다. 임시국회의사당에서 1952년 발췌개헌안(拔萃改憲案)이 통과됐다. 그러나 자유대한을 지키고 의회민주주의를 지켜 온 이처럼 위대하고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헌정사(憲政史) 흔적이 제대로 보존되고 관리되지 못한 그 안타까움은 후회막급(後悔莫及)이 아닐 수 없다.
임시수도 부산의 당시 중앙청건물이었던 경남도청청사는 경상남도청이 1980년대 창원으로 이전하면서 부산의 동아대학교에 매각됐다. 특히 동아대학교는 당시 국회의사당이었던 무덕관 건물을 헐어버리고 그 자리에 고층빌딩을 세움으로써 피난 국회의사당은 형체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전쟁 시에도 자유민주주의와 민의를 대변했던 피난 국회의사당이 역사유적으로 보존되지 못한 것은 대한민국 국회의 책임이 크다. 임시수도 국회의사당에서 대한민국 의정사상 기록할만한 사건들이 있었음을 상기한다면 말로만 의회민주주의를 외치는 국회의원들의 천박한 역사인식을 탓하지 않을 수 없다.
노무현 정권 때 광주를 ‘문화수도’로 육성하고자 중앙정부가 5조 3000억 원대의 막강한 예산을을 투입하여 전남도청 건물부지 주변을 ‘국립아세아 문화전당’으로 만들어 잘 활용하고 있는 것과 잊혀진 ‘임시수도 부산의 위대한 역사’는 크게 대조된다. 지금도 국립아세아 문화전당 운영에 연간 800억 원대의 운영비가 지원되고 문재인 정부가 3조 5000억 원을 추가 지원하기로 했다는 언론보도도 있었다. 부산시가 ‘임시수도 기념관(직원 6명)’을 운영하며 최근에는 유네스코 기록문화재 등재를 위해 노력하고 있음은 때늦은 감이 없지 않으나 다행이라 하겠다. 특히 ‘부산포럼’과 ‘북방경제인연합회’, ‘여성정책연구소’와 ‘유엔 한국평화봉사단’과 같은 NGO가 ‘임시수도복원 및 모범적 지역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는 것은 뒤늦게나마 한 줄기 희망의 빛을 기대하게도 한다.
또 적(敵)의 무리들과 대치하며 악전고투하던 국군과 유엔군에 공급된 수많은 탄약과 탄환이 하역된 해운대 동백섬 탄약부두 해안을 시민과 관할구청의 반대에도 최근 해양수산부가 매립하여 요트 마리나로 만들어 특정 업체에 특혜를 주려고 한다는 여론은 ‘임시수도 부산’의 위대한 역사현장을 짓밟는 망동이 아닐 수 없다. 또 청사포 앞바다에 ‘대한해군 승전1호 전적비’는 세우지 못할망정 특정 업체가 한전(韓電) 등 당국과 협의하여 1.2~1.5킬로미터 해상에 풍력발전기 9기를 세우려고 하는 것은 이런 작태 또한 부산역사를 짓밟는 만행(蠻行)이 아닐 수 없다.
부산은 420여 년 전 임진왜란 당시 부산포해전을 기리며 순절(殉節)한 다대포첨사 윤흥신과 정발장군, 동래부사 송상현공의 동상을 세워 추모하는 것은 좋으나 71년 전 부산이 자유대한을 수호한 교두보(橋頭堡)로 그 자랑스런 역사와 공신(功臣)들에 대해서는 소홀함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늦게나마 국난(國難)의 위기를 극복한 역사현장을 복원하고 보존하려는 부산시민들의 의지와 역사 인식의 발현에 찬사를 보낸다. 아울러 존망(存亡)의 기로(岐路)에서 국민과 국가를 지켜낸 자유와 평화의 성지(聖地)인 부산을 길이길이 잘 가꾸어 천추만대에 제대로 전하는 것이야말로 국가를 경영하는 지도자들의 중요한 책무요 국가적 임무임을 일깨우고 강조하는 바이다.
김영 편집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