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으로 인하여 단번에 부산까지 피난행렬이 밀리면서 기존 89만 명의 부산시민은 100만 여명의 피난민을 받아들이는 피난처로 산꼭대기 까지 판자촌이 세워지고, 아침, 저녁마다 물 깃는 여인들의 행렬과 연탄을 옮기는 일손들의 발길이 분주한날 들이었다. 그 당시 미군을 중심으로 한 영국아동구호재단, 캐나다아동 구호재단, 스웨덴아동구호연맹등 13개국 120개나 되는 많은 외원단체들의 도움으로 부용동에 깡통시장이 세워지고, 국제시장이 피난민들의 살아가는 일터로 대한민국을 살리곤 하였다.
1968년 유엔 원조 단이 철수하고 시민 스스로 어려운 이웃과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1970년부터 봉사(奉仕)라는 용어에서 볼런티어(Vounteer) 라는 생소한 외래말 용어가 도입되고, 1978년 한국사회복지협의회에서 자원봉사확산을 위해 보건복지부의 지원으로 “부산사회봉사 안내소”가 개설되어 부산볼런티어 협회를 지원하면서 시민이 참여하는 지역사회 살리기 운동이 시민운동으로 전개되었다.
그 이후 부산지역의 뜻있는 이대근, 유판수 등 몇 명이 시민이 참여하는 민간자원봉사단체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전국 최초로 1991년 2월 2일 한국자원봉사연합회 발기총회를 시작으로 체계적인 민간 자원봉사 활동의 기반이 마련되었다. 부산시도 1995년에 자원봉사 도시를 선포하고 품앗이 제도등 시민 참여를 독려하는 시민운동에 앞장서고, 전국에서 부산이 처음으로 “전국자원봉사지도자대회”를 개최하여 선도적으로 자원봉사 운동을 펼쳐나갔다.
한국자원봉사연합회(약칭 한자련)은 자원봉사 확산을 위한 시민자원봉사교육을 중심으로 1999년 “자원봉사관리사” 양성과정을 민간자격으로 개설하여 그동안 700여명에게 자격증을 부여하고, 지역사회의 자원봉사리더로 활동하는 일에 지원과, 2002년에는 “AVA 아시아 태평양지역 자원봉사관리 국제대회”를 주관하기도 하였다. 또한 외국 선진국의 자원봉사 프로그램을 도입하여 자원봉사 매뉴얼과 자료책자를 보급하는 일에 매진하여 각 대학이나 기업 등에서 강의 청탁과 자원봉사단체에서 벤치마킹하는 곳으로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였다.
1996년 이후 전국적으로 각지역별로 자원봉사센터가 설립되면서 상당한 부문의 기능이 옮겨지면서 한국자원봉사연합회의 역할은 축소되어 일부 전문프로그램 진행과 부산지역 대학생을 중심으로 하는 “자원봉사 리더십” 프로그램을 여름, 겨울 방학 중 3박 4일로 전개되어, 그들을 통한 조직이 구성된 “36,5도 대학생봉사단”이 지금도 활발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한자련은 2대 이종균 이사장이 27년간 헌신적인 업무를 수행하시다가 작고하여, 3대 김용식 이사장이 2019년 6월에 취임하여 “새로운 삶의 변화, 자원봉사참여”라는 구호를 내 걸고 먼저 부산시민이 스스로 행복해야 봉사와 나눔에 동참하는 선한일을 할 수 있음에, “행복시민대학”을 개설하여 12주 과정으로 질 높은 자원봉사를 실천하기 위한 인재를 양성하고 있다. 코로나로 어려운 시기지만 그래도 6기생까지 100여명이 수료하여 진구노인복지관 김장김치봉사, 농촌일손 돕기, 무료급식지원 등 코로나 시대에 맞는 봉사 터를 개발하고 있다.
지난 30년을 돌아보며 의욕이 앞서기도 했지만, 우리나라의 자원봉사의 기반을 부산에서 시작 한 점과, 더 나아가 전국 구단위의 자원봉사센터의 설립 시범지역으로 부산이 크게 기여하였다는 자부심은 자랑으로 여기고 있다. (사)한국자원봉사연합회는 “부산자원봉사30년, 한자련 창립 30주년 기념행사”와 “부산자원봉사 미래의 발전방향”이라는 주제로 오는 4월 22일 14시 부산시청 12층에서 세미나를 개최하여 새로운 시대에 자원봉사의 나아갈 길을 모색한다.
[2021년 3월 26일 제131호 1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