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겨울 아르헨티나에서는 낙태합법화가 통과되자 국회의사당앞 광장에서 수만명의 여성운동가들이 녹색까운을 입고 기쁨에 겨워 얼싸안은 사진을 본적이 있었다. 라틴아메리카에서는 카톨릭의 영향력이 가장 강하다고 평가받는 교황의 나라 아르헨티나의 낙태합법화는 그단적이면서도 전격적인 사건으로도 볼 수 있다. 1821년 낙태법이 제정된이래, 아르헨티나는 가장 강력하게 낙태를 금지해왔던 나라 중 하나였다.
이나라의 형법은 여성의 삶이나 건강이 임신으로 인해 위험에 처했거나 지적장애가 있는 또는 심신이 미약한 여성이 소위 순결을 빼앗기는 강간으로 임신한 경우에만 낙태를 허용해왔다.근본적으로 낙태에 대한 부정적인 사회분위기속에서 여성들은 자신의 임신이 낙태가 허용되는 범주에 속하는지를 판단하기 어려웠고, 낙태를 하기위해 거쳐야 하는 적대적이고 복잡한 행정절차 속에서 합법적 낙태를 포기했어야만 했었다.
이러한 현실을 바꾸기위해 이곳 여성계는 일찍이 낙태합법화를 위해 다양한 노력을 경주하여왔던 것이다. 그러니까 1994년 매넘정부의 개헌시도에 맞서서 여성단체들은 108개의 여성단체가 결합한 선택의 자유 운동을 조직해냈으며, 여성들의 몸에 대한 자기결정권과 생식권이 더 이상 침해 당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강조하며 퇴행적 개헌시도를 저지해온 것이다. 그러므로 특히 어떤 상황에서도 낙태를 허용하지 않는 낙태의 전면금지에 맞서 싸운 셈이다. 강력한 낙태반대 여론속에서 적극적으로 방어적 태도에 임했던 아르헨티나 여성계는 2010년경에 이르러 상당한 변화를 경험하게 된다.
이들은 노동조합과 학교, 도시공동체등의 단위에서 다양한 소통을 통하여 여성들이 일상 생활속에서 느끼는 낙태의 필요성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하였고, 낙태합법화가 여성의 몸에 대한 개인적 권리의 확대라기보다는 불법낙태시술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여성들이 감당해야하는 위험을 줄이는 공동체의 노력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점을 깨닿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불법낙태를 선택해야하는 여성들 대부분이 경제적으로 어려운 계층에 속해 있으며 불법낙태수술에 임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여성들이 목숨까지 잃고 있는 현실에 대한 자각은 아르헨티나 여성계가 낙태합법화를 젠더, 노동, 시민권 그리고 인권까지 아우르는 주제로 견지 해낼 수 있는 명분이 된 것이다.
드디어는 그 결과로 대규모의 낙태합법화 시위에서 나타난 큰 이슈는 “부유한 여성은 낙태를 하지만 가난한 여성은 사망에까지 이른다” 그러므로 가난한 여성들만 죽는다는 외침과 슬로건들이 아르헨티나의 불평등을 고민하는 노동조합과 여러 다양한 시민단체들의 지지를 받아내기에 이르렀고 뿐만 아니라 라틴아메리카 전역에서 빈번히 일어나고 있었던 여성살해저항구호인 “한명의 여성도 더 이상 살해되어서는 안된다”를 낙태합법화운동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낙태합법화의 문제를 인권유린과 폭력의 문제로 이해하려는 시민들까지 포용하는 광범위한 낙태합법화연대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사태 이른바를 목겨해왔던 멕시코의 페미사이드 반대 시위와 칠레의 사회대변혁을 요구하는 시위에도 매우 큰 영향을 주게 되었다. 지난3월경 멕시코에서 열린 여성살해 반대시위는 멕시코의 오랜 치안문제 그리고 정부의 고질적인 부패의 고리를 비판하는 전시민적 움직임으로 확장되었고, 세계 여성의 날 행사에는 무려 10만여명의 시민들이 시내에 집결해서 멕시코 사회에 만연해 있는 폭력행사에 대한 책임있는 대응을 요구하기도 했다.
한편 2019년 칠레의 사회대변혁을 요구하는 대시위에서 등장한 “강간범이 네가 가는길에 있다.”는 플레시몹은 상당히 자극적인 제목과 내용에도 불구하고 칠레여성이 일상속에서 감내해야하는 성폭력을 공권력의 폭력성, 사법제도의 부패와 더불어 사회전반의 가부장적 질서가 갖는 부조리와 연결함으로써 칠레시민의 대다수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아내었을뿐만 아니라 그 외에도 뉴욕을 비롯한 유럽의 파리와 베를린등지는 물론 심지어는 우리나라에서까지도 시민들의 동참을 시도하였다.
오늘날 라틴 아메리카 여성운동의 확장성을 키운 가장 핵심적인 것은 젠더 이슈가 소통보다는 갈등을, 대안보다는 혐오를 의미하여서는 결코 안될 것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바라건데 우리의 현실을 극복하는데에도 반드시 필요한 지혜로 여겨진다. 젠더 이슈는 사회의 다양한 모순과 부조리와 연결되는 크로스커팅이슈다. 모든 문제안에 젠더가 있고 젠더안에 모든 문제가 공존한다는 뜻이다. 이 문제는 누군가의 문제로만 치부될 사안이 아니고 지구촌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의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
[2022년 1월 21일 140호 1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