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쟁이로 살아온 시간이 꽤 지난 요즘. 정말 꽃처럼 예뻤던 20대 초반부터 꽃을 만지기 시작했으니 강산이 변해도 3번은 변했을 시간이었으리라. 오랜 시간 강의와 숍 운영을 하면서 끊임없이 공부하고 새로운 정보와 트렌드를 파악하는 것은 이제 익숙한 일상이다.
다만 지난해부터 ‘비대면 강의’라는 또 다른 경험을 하게 되면서 손끝에서 나오는 꽃쟁이의 감성을 영상을 통해 잘 전달해야 하는 것을 고민하게 되었다. 며칠 전 인구보건복지협회에서 주관하는 ‘부부애 클래스’ 강의를 진행했다.
외부 강의를 하게 되면 수업에 필요한 소재와 부자재들을 짊어지고 강의실 앞에 도착한 뒤 한숨 고르고, 전혀 힘겹지 않은 듯한 우아한 표정과 안정된 안색으로 강의실을 들어서는 재미난 경험을 한다. 그러나 비대면 강의가 시작되면서부터는 모든 수업 재료들은 수업에 참여하는 분들에게 미리 배송되고 나는 뭔가 허전한 듯하지만 가벼운 발걸음으로 강의장에 들어서서 수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원예치료라는 말이 있듯, 꽃을 좋아하는 사람치고 얼굴색이 어두운 사람을 흔치 않다는 것이 경험에서 나온 내 개인적 생각인데 이날 화면으로 만난 수강생들의 모습 또한 여느 수업과 마찬가지로 참 밝고 온화한 느낌이 들었다. 더군다나 수업의 타이틀에 맞게 부부 혹은 자녀까지 포함된 가족들이 화면 앞에 옹기종기 얼굴을 내밀고 있는 모습이 강의를 앞둔 내 마음을 더 따뜻하게 만들어 주는 듯했다.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다운 것이 꽃이고 숙련된 아티스트의 작품이 아니더라도 보기 좋은 것이 꽃으로 만든 작품이다.
그러나 같은 소재를 사용하더라도 조금 더 예쁘게, 조금 더 느낌 있게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우고 연구하는 것이 수업의 목적인데 이날의 수업은 부부, 나아가 가족의 사랑과 포근함을 함께 나누는 것까지 더해져 훨씬 의미있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수업을 진행하는 중간 내 목소리가 잠시 잠잠해지는 시간에는 설명 들은 배용을 바탕으로 열심히 만들어 보고 서로 의견을 나누거나 도와주기도 하며 작품을 완성해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비대면 강의는, 발표를 잘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 학생들 대상의 수업이 아니고서는 수강생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기회는 잘 없는 듯하다.꽃을 만지면서 부부가 나누는대화가 무엇일지, 아이들이 부모님에게 웃으면서 무엇을 이야기 하는지는 내 상상에 맡길 일이다. 남편과 연애할 때 자주 받았던 꽃 선물에 관한 이야기, 그렇다면 지금은 왜 그런 선물이 전혀 없는지에 대한 서운함이 섞인농담, 그 와중에 간식을 입에 넣으며 엄마 아빠의 대화에 끼어드는 귀여운 눈망울들까지.
꽃 한 다발을 펼쳐놓고 이렇게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자연스레 연출되는 것을 보니 플로리스트로서의 자부심이 다시 한번 느껴졌다. 너무 흐뭇해지는 시간이었다. 작은 씨앗 하나가 예쁜 꽃이 되기도 하고, 열매를 맺기도 하고, 싱그럽게 우거진 큰 나무가 되기도 하는데 여기에는 자연의 힘이든 사람의 노력이 담긴 손길이든 결국 시간과 정성과 사랑이 만든 결과라는 생각이 든다.
자연에서 온 따뜻하고 건강한 에너지를 고스란히 느끼고 나누는 수업 참가자들을 보며 우리들의 인생 또한 정성 들이고 사랑하며 기다린 결과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하루하루 바쁜 시간을 보내느라 애정을 느끼고 표현하는 것이 서툴게 되어 버렸을지도 모를 분들의 마음이 조금은 부드럽고 여유로와 졌으리라 기대해 본다.
[2021년 8월 27일 제136호 1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