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를 배우고 필드에 나가 제일 먼저 하는 말은 무엇일까? 아마 ‘굿 샷!’ 또는 ‘나이스 샷!’이 아닐까 싶다. 동반자가 볼을 잘 쳐서 공을 앞으로 보냈을 때 흔히 날리는 표현이다. 때론 ‘나이스 어프로치!’ 이런 말도 곧 잘 쓴다. 그린에 올라와서는 ‘굿 퍼트!’ 이런 말을 종종 하기도 한다.
가만히 보면 이런 짧은 말들이 다 우리말이 아니고 대부분 영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골프가 당초 영국에서 시작되었고 미국에서 크게 발전된 스포츠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골프용어가 영어로 되어 있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앞의 말들을 자주 쓰면 좋은 일이긴 하지만 반드시 알아야 할, 꼭 기억해야할 골프용어가 있는데 이 단어가 바로 프로비저널 볼(Provisional Ball)이다. 이것 때문에 큰 낭패를 당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말로 ‘잠정구’라고 하는데, 티샷한 볼이나 어떤 볼이 OB나 패널티 구역으로 들어갈 가능성이 있을 때 볼이 살아있는지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서 잠정적으로 볼을 하나 더 치는 볼을 말한다. 처음 친 공이 살아있으면 그 공으로 계속 플레이를 하면 되고 원구가 없으면 잠정구로 1벌타를 먹고 플레이를 하면 된다. 그런데 이 말을 외치지 않으면 상황은 돌변한다. 큰 대회에서 실격을 당하는가 하면, 우승을 눈앞에 두고 다 잡은 우승컵을 다른 선수에게 넘겨주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골프에도 월드컵골프대회가 있다. 남자 프로골퍼들이 2년에 한 번씩 국가대항전으로 벌어지는 대회인데 2인 1조로 출전해 개인전, 단체전으로 치러지는데 우리나라도 국내 랭킹 1, 2위 선수가 참가하는 게 상례였다. 이 대회에 참가한 우리나라 국가대표 두 명 가운데 한 선수가 처음 친 드라이버 샷이 숲으로 들어가자 곧바로 다른 볼을 꺼내 잠정구를 쳤는데, 동반 선수들에게 ‘나 프로비저널 볼을 친다’ 라고 명백하게 이야기 하지 않고 볼을 친 것이다. 라운드를 마친 뒤 동반 선수 가운데 한 사람이 문제를 제기하는 바람에 대회본부로부터 실격처리 되었고 대회가 끝나기도 전에 귀국하고야 말았다.
국제대회 도중 실격당해 조기 귀국 당하는 망신을 당한 기억이 엊그제 같은데 몇 년 뒤 똑같은 월드컵대회에서 다른 국내 정상급 프로골퍼가 똑같은 이유로 실격당하는 어이없는 일이 반복되었다. 협회는 이전과 똑같이 해당 선수에 영구제명이라는 극약조치를 내렸지만 국가를 대표해 국제대회에 출전한 선수가 ‘프로비저널 볼’을 할 줄 모른대서야 말이 되느냐, 국가망신 시켰다며 말들이 무성했다.
그런데 최근 국내 여자골프의 대세로 꼽히는 박민지 프로가 지난해 어느 대회에서 두 번째 친 공이 숲으로 들어갔다. 잠정구를 쳤으나 동반 플레이어에게 ‘잠정구를 친다’고 말하지 않고 그냥 다른 볼을 꺼내 쳤다. 그런데 볼이 떨어진 곳으로 가보니 처음 친 볼이 살아있었다. 박민지는 당연히 살아있는 원구로 플레이를 계속했는데 이것이 불행의 시작이었다. 잠정구를 치겠다고 선언을 하지 않으면 원구는 나갔던지 안 나갔던지 OB로 처리되므로 1벌타, 이후부터는 두 번째 친 볼 잠정구로 플레이를 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고 원구로 플레이를 계속한 것이다. 따라서 오구 플레이로 2벌타, 첫 번째 공으로 플레이를 하면서 두 번째 공은 집어 들었으니 또 1벌타, 도합 4벌타를 먹은 것이다. 우승권에서 멀어진 것은 당연한 일...
영어가 많은 골프, 다른 용어는 몰라도 잠정구를 칠 때는 반드시 동반자에게 ‘프로비저널 볼’을 선언해야 한다. 이것은 프로나 아마추어나 마찬가지로 똑같이 해당되며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한다. ‘프로비저널’이라는 다소 어려운 영어 단어가 생각나지 않으면 그냥 ‘나 잠정구 친다’라고 해도 된다. 확실한 의사 표시를 해서 동반자에게 알려야 한다. 심판이 없는 유일한 스포츠인 골프에서 동반자가 유일한 심판과 감시자의 역할을 해야 하는 이 운동의 특성 때문이다.
[2022년 11월 18일 149호 2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