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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저출산 문제의 또 다른 해결책은?

 

 정부와 지자체들은 저출산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다양한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특히 재정자립도가 낮은 중소도시나 농어촌에서 제시하고 있는 고액의 출산수당은 인구고령화로 인해 낙후되고 있는 지역의 고육지책으로 색다른 감동을 준다. 그러나 최근 일부 지역에서는 출산수당 수령 이후 역외이주하는 사례가 발생하여 일회성 대안의 맹점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즉 출산수당 지급은 저출산의 근원적인 해결방안이 아닌 것이다. 이처럼 지자체에서 저출산문제 해결을 위한 명쾌한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저출산대책이 단순히 지자체 차원의 해결과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중앙정부 차원에서 전향적인 정책을 제시하고 관련 예산을 확보해야 하며, 지자체는 중앙정부가 해결할 수 없는 지역의 문제나 수요에 부응하는 부가적인 정책을 펴야 할것이다.

 현재 중앙정부의 출산정책을 보면 다른 복지정책보다 적극성을 띄고 있는 편이지만, 여전히 출산이라는 사안 그 자체에만 매달린 협의의 정책수준에 머물러 있음을 지적할 수 있다. 출산정책이 성공하려면 출산의 후방효과가 가족과 사회 전반에 걸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충분히 고려해야한다.
 
 개인에게는 출생 이후 보육, 교육, 취업, 나아가서는 노후에 이르기까지의 전생애주기에 걸쳐 안전한 삶을 보장해 주고, 가족 차원에서는 성장기까지의 사회보장체계를 탄탄하게 마련해 주어야 한다. 또한 사회적 차원에서는 쾌적하고 수준있는 환경과 일자리 확보 등 가족구성원들이 삶의 질을 유지하며 살수 있는 지역사회를 구축해야 한다.
 
 과연 가임여성 한명당 적어도 두명의 아이를 낳아 잘 기르려면 얼마의 예산이 필요할까? 현재 우리나라는 고도성장기를 지나 선진국 진입을 목표로 지속가능한 성장을 추구하고 있다. 이 단계에서는 지난 성장기 때처럼 일방적으로 국민들의 개인적인 희생이나 사회적 헌신을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또한 정부가 출산율 향상을 위해 대규모의 예산을 확보하려면 당장에 납세자들의 조세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도 자명하다.

 뿐만 아니라 지방분권 이후 재정이 더 어려워지고 있는 지자체들은 출산관련 자체 예산을 충분히 확보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그보다 더 근본적인 한계는 출산관련 정책은 당장에 많은 돈을 퍼부어도 단기간에 정책효과가 가시화되기 어렵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단임 대통령이나 선출직 단체장들은 모험을 건 파격적인 정책을 제시하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한편 최근 산부인과 전문의들의 낙태반대운동은 그 추이가 주목되고 있다. 결국 우리가 애써 외면해온 낙태문제가 정면으로 도마 위에 오른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저출산현상이 벼랑 끝에 와 있다고 한들 정책결정자들은 10대나 20대 비혼모의 낙태가 주를 이루고 있는 현실을 그대로 직면하려고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현재와 같은 경직된 여건 속에서는 낙태반대에 따른 후유증을 해결할 수 있는 적절한 답은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부나 사회가 의료진들의 파격적인 결정을 수용할 수 있는 준비가 되지 않으면 오히려 비합법적인 돌파구가 성행하면서 젊은 여성들의 건강만 해치게 되는 엄청난 결과를 낳게 될 우려도 만만치 않으므로 시도하는 것 자체가 두려울 것이다. 출산정책에 성공한 외국의 경우, 공통점은 사회가 여러 형태의 가족을 모두 수용했다는 것이다.

 예컨대 10대 비혼모(teen-mother)들의 출산지원정책이 공교육의 울타리 속으로 들어간 것이나, 다문화가족에게 공평한 기회를 제공하는 것 등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우리나라도 이제 국제화에 편승하면서 엄격했던 순혈주의의 전통은 점차 너그러워지고 있다.

 하지만 비혼모인 여성까지 정서적으로 수용할 만큼 개방적이 되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더 걸릴지 모른다.
 
 정부가 합법적인 결혼에 기반한 가족의 출산만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것도 이런 배타적인 국민정서 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엄청난 예산만 투입한채 성공하기 어려운 답을 찾는 데 전력하는 모양새를 보일 뿐이다.
 
 결국 우리가 선택해야 하는 것은 예산의 확보에 더해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정서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라 생각한다.

 산부인과 의사들의 자정활동이 우리에게 이 문제에 직면할 수 있는 과제를 던져 주었다. 해결을 위한 공은 우리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돌아왔다.
 
[2010년 4월 1일 6호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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