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전, 성매매 근절을 선포한 성매매특별법 발효 이후 15살 어린 나이에 성매매현장에 발을 들였다가 겨우 새로운 인생을 찾은 10대를 주인공으로 특집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적이 있다.
정부가 단단히 마음 먹고 곳곳의 홍등가를 단속하기에 나섰는데 이후 성매매 여성들을 대상으로 장 사를 해오던 상가들은 매기가 뚝 떨어지면서 살길이 없다고 울상에 나서기도 했지만 이 법은 범사회적으로 환영을 받으며 대대적인 단속을 가능하게 했다.
그러나 양지 있으면 음지 있는 법. 차후 취재에 나서면서 알게 된 은밀한 사실은 특별법 이후 성매매가 확실히 줄어드는 눈에 띄는 효과는 나타났지만 예기치 못한 또 다른 현상이 불거져 나오고 있다는 것이었다. 전문가들의 용어를 빌리자면 <풍선효과>라 이름 지어진 사회현상. 풍선의 한 곳을 누르면 다른 곳이 불거져 나오는 것처럼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는 대신에 또 다른 문제가 새로 생겨난 것이다. 보이는 사창가의 목을 죄며 사라지길 바랬더니 더 은밀한 곳으로 성매매 현장이 숨어 들어가고 있었다. 드러내 놓고 알려졌던 음란 퇴폐 문화의 온상들이 주택가로, 해외로 숨어 들며 또 다른 문제를 만들어 냈다.
최근에 이어지고 있는 낙태금지 단속 강화에 관련된 일련의 보도들을 보며 대뜸 풍선효과가 떠오른 것은 왜일까? 엊그제 인터넷 한 사이트에는 이런 글이 올라와 있었다.
‘저 좀 살려주세요! 요즘 낙태금지령으로 산부인과에서 수술을 안해준다는데요 .. 지금 6주 정도 되 었어요 . 절대로 아기를 낳을 입장이 못 되는 사람입니다. 무조건 낳는 게 해결책은 아니잖아요? 낙태 해주는 병원 좀 알려주세요, 어떻게 하면 낙태할 수 있나요? 제발 낙태하는 법 좀 저에게 알려주세요!’ 이 글의 제목은 <낙태하는 법> 이었다. 자극적인 제목은 높은 클릭수를 보여주고 있었다.
한 10대소녀는 눈물로 인터넷 사이트를 도배했다. 미혼모에 대한 곱지 못한 시선의 한국사회에서 아이를 낳은 후 변화될 자신의 인생이 두려워 울고 있었다.
비록 잘못이 있었다고 해도 비록 숫자가 얼마되지 않는다고 해도 네인생 네가 책임지라는 말로 나 몰라라 할 수 있는 일인지도 나는 정말 모르겠다. 원치 않은 임신으로 인해 이혼을 이야기하는 젋은 부부의 글도 보인다. 낙태 가능한 병원 정보를 부탁하는 간절한 사연도 수두룩하다. 낙태 후 몸조리하는 방법도 부지기수로 인터넷을 달구고 있다.
이제 또 다른 걱정을 해야할 시기인 것이다. 풍선효과에 밀리고 밀려 한 쪽으로 툭 불거져버린 이들이 살기위해 찾을 최후의 선택. 그리고 그 문제를 처지 해 줄 어두운 손길이 재빠르게 등장할 것이다. 아니 숨은 해결사들이 이미 움직이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누군가는 다가가 그들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 것이다. 불법시술 후 천정부지 가격으로 돈을 요구하고 몸은 망가지고 곳곳에서 벌어질 이런 부작용들이 무서운 속도로 번져가며 이면의‘ 지하 산업’으로 자리잡을까 두려워진다. 우리는 안다. 전국민의 일체화 된 사회적 동의를 얻기 힘든 문제일수록 물리적 권력의 영향이 커질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모르는 바가 아니면서도 이 문제에 관련해서는 어느 정도의 탄력적 운용만이 살 길이 아닌가하는 조심스러운 염려를 꺼내 본다.
어느 누구는 이러한 단속 강화가 높은 출산율로 이어질 것이라는 어이없는 이야기도 꺼내든다. 원하지 않은 생명들이 가져올 이후의 사회적 파장은 진정 고려하지 않은 것일까? 기가 막히다. 어른도 두려운 이 현실 앞에 잘못을 저지른 아이들의 문제는 더더욱 걱정이 크다. 나는 이제 대한민국의 엄마로 사는 일이 더 두려워진다. 무조건적인 낙태 찬성도 정답은 아닐 것이다.
물론 미성년자의 낙태는 아직 전체의 3.6%에 불과하다고 하지만 성에 대한 인식이 더욱 개방되고 있는 이 현실 앞에 숫자는 정말 숫자에 불과한 것이다. 그렇다면 공식적인 낙태 금지로 정말 낙태가 줄어들 것이라고 보는가? 그렇다고 누가 장담할 것인가? 내가? 당신이? 경제적 이유로 인한 낙태는 기본적으로 반대한단다. 명의 소중함을 생각하면 이론적으로야 맞는 말이지만 현실에서 당장 부딪히는 경제적 이유를 누가 어떻게 무시할 것인가? 역시 막막한 대답이다.
세계는 한가족이라고 한다. 세계는 이미 동 시간대에 같은 일을 하고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영화를 보며 같은이야기를 나누고 같은 제품을 쓴다. 그러나 문화는 다르다.
똑같은 상표의 옷을 입고 똑같은 맛의 음식을 먹고 똑같은 교육을 받는다 해도 태생적으로 우리 몸에 흐르는 우리식 사고의 틀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사라질 수 없다. 아니 사라져선 안되는 것들도 있다. 그것이 문화이고 근본이며 우리를 우리답게 하는 <우리 것>이기 때문이다.
임신을 한 여중생이 부모의 보호를 받고 떳떳하게 텔레비전에 나와 자신의 힘든 미혼모시절을 이야기하며 공감의 눈물을 얻어내기도 하는 것은 아직은 <우리 것>이 아니다. 아직은 2010년 대한민국 현실일 수가 없다.
오늘의 현실 앞에 그런 여중생을 두고 눈물 흘리며 허용할 넉넉한 가슴을 가지고 있는가? 나는 아니다. 눈물은 함께 흘려도 아직은 그렇게 살아가라 허용해 줄 가슴이 없다.
내가 아직도 구태의연한 보수인가? 쿨 한 당신의 선택이 궁금하다.
[2010년 3월 10일 5호 1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