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무지개가 떴다. 일곱색깔이 아닌 빨간색 일곱 줄, 혹은 노란색 일곱 줄, 파란색 일곱 줄이면 어떤 장면이 될까? 사람의 모습도, 언어도, 생각도, 제각각의 색을 가지고 있는데, 모두 한가지 모습, 한가지 언어, 한가지 생각만 한다면 어떤 세상이 될까? 오천년 단일민족을 자부심으로 내세우던 시절에 비해 요즘 우리나라는 다문화에 많이 관대해졌다.
각종 지원 프로그램도 줄을 잇고 있다. 어떤 자치단체에서는 다문화 행사에 초청할 대상자를 구하지 못해 종종걸음이란다. 이중삼중으로 프로그램에 참석하느라 다문화 며느리들이 고생도 심하단다. 다문화에 관심이 쏟아지면서 지원도 쏟아지고 있는 상황, 지금쯤은 상황정리가 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갑자기 취재를 위해 다문화 가정을 찾다보면 사례가 돼 줄 가정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지원이 제대로 되고 있는지 뭐가 더 필요한지를 알아보기 위해, 구청으로 기관으로 여기저기 수소문을 해서 은정(가명)이 집을 소개받았다. 엄마가 필리핀에서 시집을 왔다.
눈망울이 초롱초롱한 은정이는 여느 열 두 살짜리 초등학생답게 너무나 자연스럽게 우리말을 잘 했다. 장사를 하는 아빠는 성실한 가장이고 엄마는 알뜰한 주부다. 평범하게 살아가는 보통가정, 그것이 은정이네 집이다. 그런데 여기서 다문화가정의 문제들을 찾으려고 하니 아무것도 찾아지지 않는다. 해외조기유학에 고액과외를 하면서 갈등을 빚는 다른 집들보다 오히려 아무 문제도 찾을 수가 없었다.
은정이가 크게 불편하진 않지만 그래도 좀 달라졌으면 하는 건, 학교에서 각종 지원대상자로 이름을 불리는 일이다. 급식비, 준비물 지원도 은정이는 당연히 받는다. 학교 행사가 있을 때마다 다문화가정 아이라며 상도 주고 선물도 준다. 친구들은 다른 아이들이 뭘 받을 때면 부러워 하지만 은정이가 뭘 받으면 불쌍해서 받는 것처럼 측은해하는 눈빛이다. 이런 느낌이 좀 싫단다. 아직 어려서 좀 싫은 정도지만 본격적인 사춘기가 되면 이렇게 구분짓는 일이 상처가 되지 않을까? 그래서 찾아낸 문제는 지원이 문제이거나 지원방식이 문제라는 점이다.
다문화 가정이 문제가 아니라 다문화 가정에 접근하고, 다문화 가정을 다루는 방식이 문제여서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 다문화에 대한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다문화 가정의 한쪽 부모는 태어나면서부터 자연스럽게 익힌 말로 자유롭게 의사소통을 하는 사람들보다 우리 사회에서 살아가자면 여러 가지 적응에 어려운 부분이 있다. 그 당사자에게 사회의 소수 약자 차원의 보호와 지원은 필요하다. 그러나 다문화가정은 저소득층이라는 공식으로 접근하며 아이들을 구분짓는 지금의 방법에는 분명 문제가 있다.
지금 부산 2만, 경남 1만 정도의 다문화가정은 가속도가 붙으면서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몇 세대가 지나면 모두가 다문화가정이 돼 있을 것 같다. 생물학적으로 혼혈은 7대가 지나면 어느 한쪽으로 융화된다고 한다. 5천년 단일민족 속에는 흉노족, 거란족, 여진족, 일본인, 포르투칼인... 미처 알지 못하는 다민족의 피가 흐르고 있다. 그동안은 같은 아시안이 다수여서 외견상 큰차이가 나지 않았지만 앞으로는 백인, 흑인 혼혈도 늘어날 것이다.
혼혈 유전자가 우성이어서 혼혈이 대세가 되고 그렇게 우리 후손들의 외모도 조금씩 바뀌어 갈 것이다. 모국어를 버리지 않으면 우리말과 우리글이 살아서 이어지겠지만 이것도 장담할 수는 없다. 국어교과서를 보면 고문과 현대어가 얼마나 달라졌는지 시험문제 정답찾기가 쉽지 않다. 신라시대 사람이 지금의 현대인과 대화를 하면 서로 얼마나 알아들을까? 지금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끼리도 인터넷 약어가 외계인 말 같은데... 이런 소통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당사자에 대한 한국어 교육과 지원을 늘리는 일, 자녀들이 또 다른 한쪽 조상의 말을 익힐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이 중심이 됐으면 한다.
이벤트성 각종 행사에 동원하고, 어렵고 불쌍한 이들을 동정하듯 물질적 지원을 쏟아내는 일은 아니지 싶다. 사람의 모습도 언어도 서로 섞이며 달라지는 시대를 향해 시간은 끊임없이 흐르고 있다. 미국에서는 혼혈이 전체인구의 5%로 20세 이하에서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앞으로 20년 내에 인종에 대한 구분이 무의미해질 것이란다. 우리도 이런 속도로 몇 세대가 흘러가면 다문화라는 말이 무색해지는 다문화 국가가 될 것이다. 오천년 전부터 생각하면 나도 다문화가정의 일원이고, 내 후손은 다문화 가정, 다문화 국가 시대를 살아간다는 생각에서 오늘 우리가 할 일을 찾아봐야겠다.
우리 후손이 마음의 상처를 받지 않고 자기가 살아가는 국가에서 당당한 구성원으로 권리를 지키고 책임과 의무를 다할 수 있도록! 다시 무지개가 뜬다. 어느 색이 주이고 어느 색이 종이 아니라, 경계없이 함께 어울리면서도 자기 색을 잃지 않을 때, 더욱 아름다운 무지개다.
[2010년 12월 16일 14호 1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