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년 가을 까까머리, 단발머리 남녀공학 시골중학생들이 꿈에 그리던 수학여행을 가난했던 이유로 동기생 전부가 포기해야 했던 적이 있었다.
그 후 50년이 지나 반들반들하던 이마에 주름살이 깔리고 까까머리 단발머리가 반백의 노인들이 되어 동기회 집행부 노력의 덕에 당시 105명 졸업생중 남녀 43명이 중학시절의 추억을 더듬으며 꿈에 그리던 수학여행을 실현할 수 있었다.
더 많은 동기생들이 참석했으면 싶었지만 애석하게도 그간에 운명을 달리하거나해외에 나가 있거나 건강상으로 동참이 불가능하거나 연락이 닿지 않는 동기생들이더러 있어 이들을 제외하고는 거의가 동참하였다.
수학여행코스는 버스로 부산을 출발하여 영주버스터미날에서 서울쪽에서 내려오는 동기생들과 합류하여 영주 부석사를 관광하고 울진군 백암온천에서 1박을 하면서 모두가 한마음으로 중학시절의 동심으로 돌아가 옛 추억을 더듬으며 친목을 다지는 오붓한 저녁시간을 보냈다.
다음날 동해안을 따라 남하하면서 풍력발전소를 돌아보고 영덕군 강구 포구에서 홍게와 각종 생선회에 소주한잔을 곁들여 옛정을 되새기며 중식을 하고 다시 포항을 거쳐 중학시절에 가려다 못간 수학여행지인 신라의 고도 경주에 들러 관광을 한 후 저녁을 먹고 KTX 경주역에서 아쉬운 석별의 정을 나누었다. 다시 제각각 삶의 현장으로 복귀하자니 만감이 교차했다. 부산으로 돌아오는 버스 속에서 목이 터져라 정다운 옛 노래들을 합창하면서 돌아오면서 격세지감을 실감키도 했다.
누구나 찢어지게 가난했던 50년 전 우리가 다녔던 중학교는 서낙동강변 가락면 사무소 소재지에 위치하고 있었다. 김해군내 가락면, 녹산면, 장유면 일부의 3개면에서 주로 진학을 하였기에 가락면의 일부학생을 제외하고는 모든 학생들이 꼭 나룻배를 타고 직접 노를 저어 서낙동강을 건너 통학을 해야했다.
녹산면 먼 곳에서 오는 일부 학생들은 새벽밥을 먹고 십리 길을 걸어와서 나룻배를 타고 건너 또다시 십리길을 걸어서 등교하였으니 교통이 발달된 오늘에 비해 개근을 하는 것만으로 장학생에 다름없잉 인내와 끈기를 요구하는 학업생활이었다.
나룻배는 비바람치고 태풍이 불거나 한겨울 얼음을 깨면서 건너다니기는 무척 힘이 들었으니 언제부터 들어섰는지 모를 편리한 고가도로와 다리가 쑥쑥 뚫리고 놓여져 요즘 젊은이들야 그 힘겨움을 알턱이 없을 테다. 농번기 농사일 거들기도 바쁜 시절 배움에 대한 열정으로 설령 얼음을깨고 나룻배를 저어 등교한 들 반가운 친구들을 만나고 배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행복한 시절이었다.
그 시절 우리 동기생들이나 선배들은 그때 단련된 체력이 밑바탕이 되어 그런지대체로 모두가 건강한 편인 걸 보면 참으로 다행이다.
봄철에 오봉산이나 덕도초등학교 뒤편 상덕산에 오르면 김해평야 온 들판이 자운영 꽃으로 수놓아 아름다운 붉은색 바다를 연상케 하고 보리가 익어 가면 온 벌판이다시 누런색으로 옷을 갈아입고 여름철이면 서낙동강에서 멱을 감으며 고동과 대치인을 잡고 재첩도 건져냈다. 가을이면 황금빛 벌판 또한 황홀했고 겨울이면 서낙동강 얼음판 위에서 썰매 탔던 추 또한 잊을 수 없다.
학창시절 가난했지만 큰 꿈과 낭만이 있었고 절제와 끈기 인내심을 배웠다.
이제 어디에서고 그 시절의 까까머리 중학생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지만 지금 중학교를 다니고 있는 나의 손자들을 보자니 변화와 발전을 실감한다. 이제 국민소득도 높아지면서 수학여행도 외국으로 가는 시대가 됐다.
그리고 얼마 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갔다가 현지 수학여행을 온 서울의 모 고등학교학생들을 단체로 직접 만나기도 했다. 지난 50년 동안 한국의 수학여행 풍속도가 이렇게 많이 변한 것이다. 전 세계인이 놀랄 일이다. 어디 꼭 수학여행 풍속도만 이렇게 변한 것일까? 지난 50년 동안 우리나라의 모든 분야가 이렇게 변한 것이 아닌가.
이러한 변화와 발전이 그 시절 수학여행조차 갈 수 없었던 기성세대들이 열심히일하고 산업전선을 일군 덕에 이 만큼의 환경을 만들 수 있는 원천이 되었으리라.
배고픈 시절, 탈 가난의 정신과 이를 위한 학구열의 결과일지도 모른다. 지금 외국으로 수학여행을 다녀온 우리손자들의 50년 이후는 또 어떻게 달라질까. 만감이 교차하는 반세기만의 변화된 수학여행 풍속도를 보면서 향후 우리나라의 모습은 어떻게 또 달라질지 사뭇 궁금해진다.
[2012년 11월 19일 제36호 3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