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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정의의 외침 그들에게만 맡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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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방문 후 다시 미국에 돌아와서 제가 한 일은 정신대 할머니들을 돕는 일이었다. 그 소녀상이 결국 이곳에 세워졌다. 다른 어떤 이가 이일은 다자기들이 했다고 뉴스에 나갔지만 시의회부터 소녀상을 세우고 공청회에 나가 이 소녀상을 세워야 할 이유를 설명한 사람들은 모두 PAVA 사람들이었다.
 
누가 했다고 하는 게 중요한것은 아니지만 우리의 자라나는 다음세대들이 주역이 되어 이 일을 담당했다는 사실만은 알리고 싶다.
 
필자는 미국이민 후 방송사업을 접고 지난 18년 동안 이곳 Radio방송사인 Radio Korea 에 매일 칼럼을 써 방송을 하고 있다. 이번 주제는 최근 또다시 이슈가 되고있는 위안부 할머니문제와 관련해서다.
 
나에게 있어 이곳을 찾았던 정신대할머니들과의 개인적인 인연은 전혀없다. 어느 누구의 소개로 그저 목 인사 정도를 나누었을 뿐이다. 단 3번을 보았을 뿐인데 왜 그 할머니들이 머리속을 떠나지 않는지 모르겠다. 이제는이 세상 사람들이 아닌 많은 할머니들의 영혼들이 혹시 나를 괴롭히고 있는것은 아닌지 하는 두려움조차 느껴졌다.
 
이곳을 찾은 김복동 할머니는 가족이 없다고 말했다. 아니 그에게 가족이 있을리 만무하다. 그래서 정신대에 강제 끌려갔던 할머니들은 함께 모여산다고 했다. 이들에게는 가족이 있을리 없을 것이고 뒤를 이을 후사 또한 있을 리 만무하다. 그렇다고 그냥 그렇게 살다가 홀연히 이 세상을 뜨고 말면 그뿐일까. 누구하나 이들의 죽음을 진정으로 슬퍼해 줄 이가 있을까.
 
생이 아무것도 아니라지만 그야말로 풀잎 맺힌 아침 이슬처럼 햇볕이 나면자연 증발되어 버리는 것이나 진배가 아닌듯 해 안타깝다. 그 할머니들도 부모가 계셨을 터다. 생계를 잇는데 도움을 주기 위해 군수공장에 갔다고 믿은 부모도 있었을 것이고, 탄약을 만드는 공장 직공으로 돈을 벌러 갔다고 믿은 부모도 있었을것이다. 이제 막 피려는 십대의 어린딸이 무시무시한 일본군의 성 노리개감으로 전락해 살면서 짐승보다 못한삶을 살았다면 이 소식을 들었다면 어느 부모인들 까무러치지 않았을까싶다.
 
우리가 알기로는 중고등학교 여학생들에게도 교장선생이 나서서 패전에 허덕이는 일본군을 승승 장구하는 일본군으로 둔갑시켜 이들을 돕는 일에 나서야 한다고 독려를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농촌이나 어촌에서는 이장이나 면장이 나서서 누구누구의 집 처녀를 꾀어내도록 할당을 받아 그 일에 나섰다는 말도 들었다. 물론 그들 위에는 물론 일본 관리들이 그런 일을 시키고 종용을 했을 터이지만 이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더 많은 실적을 올리려 악을 썼다는 얘기는 같은 민족으로서 서글프게한다.
 
그렇게 해서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도 훨씬 더 많은 꽃다운 조선 처녀들이 이들의 성노리개감으로 이용을 당했다니 참으로 억울하다는 생각이든다. 고작 14살 혹은 15살의 어린 소녀들이 '성'이라는 것을 알리 만무했을 것이다. 그런 숙맥 처녀에게 약을 먹여가며 하루에 50명이 넘는 군인들을 상대하게 했다는 사실은 믿어지지도 않고 용서를 할 수도 없는 일이다.
 
하루에 50명이면 일 년에 약 1만8천여 명이라는 엄청난 군인들을 상대했다는 계산이다. 그 몸인들 온전했을리 없다. 그것도 10년을 이 짓으로 세월을 보내게 만들었으니 고국으로 돌아온들 어디에서 기를 펴고 살았겠는가.
 
그런 사실은 일본은 사죄와 배상은 커녕 역사를 왜곡하면서까지 부인하고있다. 국제사회를 우롱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어머니라는 여성이 있고, 누이가 있고 아내라는 여성도 있다. 물론 우리모두에게 귀여운 딸이라는 여성도 있다. 만일 그 위안부 피해자가 우리 옆자리의 여성, 가족의 일원이라면 어떤 느낌이겠는가.
 
지금 많은 이들이 강건너 불구경하며 김복동 할머니를 대하듯 "그저 그것은 당신 일이고..." 하면서 그냥 지나칠수 있을까. 부끄러운 역사앞에 정작 위안을 받고 보상을 받아야할 피해자들이 평생을 가난하고 힘들게 없는 존재이듯 숨어살다시피한 그들도 이제 역사의 증인으로 계속 남아있기엔 세월이 너무나 많이 흘렀다.
 
남아있는 이들은 절규한다. 오죽하면 부끄러움을 무릎쓰고 세상을 향해“나는 그렇게 젊음을 짓밟혔다"고 절규의 몸부림을 칠까. 비가 오나 눈이오나 한 번도 빠짐없이 한국의 일 영사관 앞에서 매주 수요집회를 통해 문제제기해온 위안부 할머니들. 이제 그들에게만 맡길 수 없다.
 
역사를 바로세우기 위한 꾸준한 이의제기와 국제사회를 향한 정의의 외침은 계속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안타까운 진실을 외면하고 개인의 안위와 영화로운 삶에만 급급하기보다 역사의 피해자로 평생을 살아온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따뜻한 관심을 보여줄 때다.
 
 
[2013년 8월 21일 제44호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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