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최고권력자, 왕과 여인
과거 최고 권력자인 왕의 곁에는 반드시 여인이 있었고 그 역학 관계는 비교적 전형적인 형태로 나타났다. 그 중에는 부군(夫君)인 왕을 성군으로 만든 이도 있고 폭군으로 만들어 쫓겨나거나 심지어 나라가 멸망하게 만든 이도 있다.
시경(詩經) 남주(南州)편에 나오는 ‘요조숙녀 군자호구(窈窕淑女 君子好逑: 그윽하고 정숙한 숙녀는 군자의 좋은 짝이다)’라는 말에 어울리는 여인으로는 삼국시대 촉나라의 명제상 제갈량의 부인 황월영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또다른 현명한 퍼스트 레이디로 종리춘(種離春)을 들 수있다. 춘추전국시대의 역사를 담은 ‘열국지’(列國誌)에는 종리춘이 강성해진 국력만 믿고 정사를 멀리하는 제(齊)나라 선왕(宣王)의 허물을 지적하고 일깨워줌으로써 제나라를 더욱 부강하게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비록 얼굴은 추했지만 왕비의 자리에 오르고 무염군(無鹽君)이라는 칭호까지 하사받
았다. 반면 주왕을 주색에 빠지게 해 은나라를 멸망시킨 달기, 미인계로 오나라를 망하게 한 서시와 안록산(安祿山)의 난으로 멸망한 당나라 현종의 비 양귀비는 후자에 속할 것이다.또한 최고 권력자의 여인이었다가 자신이 직접 권좌에 오른 사람으로는 한고조 유방(劉邦)의 부인 여태후나 당나라의 측천무후(武則天)를 들 수 있다.
았다. 반면 주왕을 주색에 빠지게 해 은나라를 멸망시킨 달기, 미인계로 오나라를 망하게 한 서시와 안록산(安祿山)의 난으로 멸망한 당나라 현종의 비 양귀비는 후자에 속할 것이다.또한 최고 권력자의 여인이었다가 자신이 직접 권좌에 오른 사람으로는 한고조 유방(劉邦)의 부인 여태후나 당나라의 측천무후(武則天)를 들 수 있다.
우리 나라 역사에서 권력자와 그의 여인 이야기를 찾는다면 인조반정으로 쫓겨난 광해군(光海君)의 여인 김개시(김개똥)와 폭군 연산군(燕山君)의 여인 장녹수(張綠水) 정도가 있지 않을까 싶다. 이처럼 천하를 호령하던 영웅호걸이지만 여인의 치마자락에 싸여 국사도 망치고 자신의 인생도 망친 경우는 허다하다.
현대의 최고 권력자와 여인의 역학관계
현대의 사례에서는 그 역학관계가 조금 더 다양하게 나타난다. 중국 혁명을 이끈 마오저둥(毛澤東)의 부인 장칭(江靑)은 권력의 핵심에 있다가 마오의 사후 마오의 정당성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 그의 정치적 책임까지 뒤집어 쓰며 희생양이 되었다. 역사가 승자의 편이라 더 큰 비난을 받은 면도 있지만 실제로 그녀는 문화대혁명 당시 정적에 대한 숙청 등 비난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미국의 제52, 53대 대통령을 지낸 빌 클린턴과 그의 부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의 이야기는 유명하다. 클린턴 대통령과 힐러리 여사가 길을 가다가 우연히 주유소를 경영하고 있는힐러리 여사의 옛 애인을 만났다. 클린턴이 으쓱하면서 “당신이 저 사람이과 결혼했다면 아마도 지금은 주유소 사장 부인이 되어 있겠지?”라고 하자 힐러리 여사는 “아니오. 저 남자가 미국 대통령이 되어 있겠지요”라고 대꾸했다고 한다.
그녀는 오바마 2기 행정부의 출범과 함께 국무장관의 자리에서 물러났지만 여전히 2016년에 있을 미국 대선에 가장 가까이 서있는 사람이다. 만약 퍼스트 레이디 시절 클린턴 대통령이 백악관 인턴이던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추문으로 세인에 회자될 때 힐러리 여사가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현재 상황은 어땠을까?
미국 역사상 가장 인기가 높은 대통령 중 한명인 존 F. 케네디의 부인 재클린 케네디는 그런면에서 힐러리 클린턴과 대비된다. 얼마 전 발간된 재클린 케네디의 전기에는 바람둥이 남편의 여성 편력에 질린 그녀가 남편의 외도에 복수하기 위해 시동생 두 명과도 부적절한(?) 관계를 가졌다는 이야기가 폭로되기도 했다.
자신의 욕망과 탐욕에 눈이 어두워 배우자를 망명하게 만든 퍼스트 레이디도 있다. 현 필리핀 하원의원으로 전 필리핀 대통령이자 독재자였던 페르디난드 마르코스의 아내 이멜다 마르코스는 필리핀에서 사치와 부패의 상징으로 대통령 관저에 있던 수 천 켤레의 구두로도 유명하다. 미스필리핀 1위로 입상해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눈에 들어 결혼한 뒤 영부인으로 있으면서 남편과 합작하여 온갖 사치와 부패로 필리핀을 도탄에 빠트린 후 미국으로 마르코스와 망명한 뒤 그가 사망하자 바로 귀국해 필리핀에 기념관을 짓고 남편의 시신을 유리관에 넣어 보관하였다고 한다.
중국의 제일부인 펑리위안
지난 7월 초 중국의 국가주석인 시진핑(習近平)을 따라 방한한 제일부인(第一夫人: 퍼스트레이디) 펑리위안(彭麗媛)은 ‘우아하다’, ‘당당하다’는 찬사를 넘어 각국의 언론매체로부터 ‘중국의 새로운 명함’이라고까지 불린다. 30여 년이 넘는 공연 활동을 통해 익숙해진 대중과의교감 능력은 시진핑의 부드러운 카리스마와 융화되어 14억 중국인들을 매료시키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18세에 입대해 쭉 군에서 근무하여 현재 현역 소장(우리나라의 준장에 해당)이며 인민해방군 총정치부 가무단장을 맡고 있는 여걸이다. 시진핑이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에 오르기 전까지는 ‘펑리위안의 남편’으로 불리기도 했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장칭(江靑)에게 사형이 선고된 이후 중국에서 퍼스트 레이디의 존재감이 거의 없었던 것을 감안할 때 향후 8년 중국을 이끌어가는 리더십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 중 하나라 하겠다.
대처수상, 메르켈 총리와 박근혜 대통령
현대에 나타난 특징 중 하나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여성 최고권력자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19세기 '사상 최고 최대의 제국'을 자랑했던 영국이 몰락되면서 발생된 "영국병”을 퇴치하여영국의 재도약을 가능하게 했던 철의 여인 대처수상을 보자.
영국의 보수당 정치가이자 총리로, 유럽 최초의 여성 총리로 20세기 들어 총리직을 세 번 연임한 최초의 인물이며, 그녀의 재임 기간은 1827년 이래 가장 길었다. 또한 두 아이의 엄마로, 아내로, 변호사이자 정치가로서의 세 가지 일을 동시에 훌륭하게 소화해 낸 그녀는 역사적으로 위대한 지도자임에 틀림없다.
동독 출신 목사의 딸에서 3선 총리에 오른 독일 메르켈 총리도 좋은 사례라 할 수 있다. 그녀가 정치인으로 주목받기 시작했을 때 ‘참신함이 유일한 무기’라는 박한 평가에도 불구하고 첫여성 총리로 출발해 지금은 당파를 초월한 국가지도자로 우뚝 섰다.
엄마를 뜻하는 ‘무티(Mutti) 리더십’을 보여주며, 총선에서 압승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대연정을 성사시키기 위해 야당인 사민당을 끌어안는 통 큰 행보를 보여주었다. 자녀는 없지만 그녀 역시 재혼한 남편 요하임 자우어를 위해 직접 장을 보고 음식을 만드는 평범하고 소탈한 모습을 보이는 것도 인기의 비결로 평가된다. 남편 역시 부인을 위해 외조에 힘을 쏟고 있다고 한다.
지난 시진핑 주석 부부의 방한 때 청와대 조윤선 정무수석이 퍼스트 레이디(first lady)의 역할을 대신해서 펑리위안 여사를 수행하는 모습에 조금은 아쉬움이남는다. 대면보고를 잘 받지 않는다는 야당의 지적에 박근혜 대통령이 반려자의 외조가 있었다면 ‘불통’이라고 하는 원색적인 비난 대신 뭐라고 했을까? 반려자야말로 소통을 필요로 하고 소통할 수 밖에 없는 가장 가까운 사람일 테니 말이다. 그의 국가 경영의 반려자, 가장 가까운 조력자는 누구일지 궁금하다.
최고 권력자와 배우자의 역학 관계를 단순하게 유형별로 정형화할 수는 없지만 역사적으로볼 때 상생한 경우와 반대의 경우가 극명하게 대비된다. 그래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위인사표(爲人師表)도 반면교사(反面敎師)로도 되지 않을까?
[2014년 11월 20일 제58호 3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