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낮은 그 푸르름으로 눈부시다. 이팝나무의 꽃은 연두색 나뭇잎들 속에서 하얗게 빛나고, 버드나무도 새로운 초록 이파리를 내어 바람결에 흔들린다. 신록의 푸르름 사이에서 총천연색 장미들은 만개할 준비를 하느라 봉오리마다 옹송거린다.
또한 5월의 밤은 그 향기로 마음을 아득하게 한다. 언덕 위 아카시아가 뿜어내는 달콤한 향기와 편백나무, 삼나무의 상쾌한 향기가 어우러진다. 이처럼 5월의 자연은 스스로 바쁘고 풍성하다.
‘가정의 달’ 5월에는 어린이날, 어버이날 등 많은 기념일을 챙기느라 분주해진다. 자녀, 부모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동안 ‘나에게 가정이란 무엇일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가족은 멀리 떨어져 있거나 한동안 연락을 하지 못해도 언제나 나를 지지하고 응원해 줄 거라 믿는 존재다.
그리고 업무에 지친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가면 익숙하고 정다운 미소로 휴식을 주고 새로운 에너지를 채워주는 존재다. 이처럼 가정은 우리 삶의 터전이고 울타리이다. 그러므로 가족과 함께하는 ‘저녁이 있는 삶’은 그야말로 소중한 가치다.
우리나라에서는 잦은 야근과 회식, 주말에도 이어지는 시간외 근무가 익숙한 풍경이지만, 직장인이 일찍 퇴근해 가족과 함께 저녁을 먹고, 나 자신과 가족을 챙기는 시간들은 삼시세끼를 먹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이 되어야 한다.
행복한 삶의 근본은 가정 안에 있기에, 일을 하면서도 아이를 돌보고 가정을 가꿀 수 있는 적정한 노동환경 조성은 필수적이다. 조금 천천히 가더라도 행복한 삶을 위한 기본적 환경은 절대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지난해 발표에 따르면, OECD 국가들의 2014년 연간 평균 노동 시간은 1,770시간이었고, 우리나라의 연간 노동 시간은 2,124시간으로 멕시코의 2,228시간 다음으로 길었다. 우리나라의 노동시간은 OECD 국가 평균보다 354시간이 더 길며, 이는 8시간 노동일을 기준으로 할 때 44일 이상에 해당하는 시간이다.
반면, OECD 국가 중 연간 노동시간이 가장 짧은 나라는 1,371시간의 독일로서, 한국보다 753시간이 더 적었다. 독일인과 비교하면 한국인은 94일, 다시 말해 3개월 이상 더 노동을 하는 꼴이다.
우리 사회도 이제 고속 성장 위주 ‘정책’에서 벗어나, 사회적 유대, 일과 삶의 균형 등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준비하고, 자율성과 창의성을 존중하는 ‘문화’의 옷을 입어야 할 때다. 정책이 아닌 문화적 요소야말로 행복한 미래를 여는 핵심 열쇠이기 때문이다. 이에 일과 가정이 양립하는 조직문화를 위한 몇 가지 제언을 해본다.
첫째, ‘일 가꾸기’이다. 직장에서 선례답습적으로 해오던 불필요한 일을 발굴하고 이를 줄여 ‘업무는 Mini, 성과는 Max’를 만드는 것이다. 또한 강연회 등 직원들의 업무와 삶 양면의 지혜와 노하우를 공유하는 기회 제공을 통하여, 직장 삶의 만족도를 높임과 동시에 직원 사기를 진작하는 유연한 조직문화를 만드는것이다.
둘째, ‘삶 가꾸기’이다. 삶의 중심은 직장이 아니라 가정, 나아가 ‘내 삶의 가치 중심잡기’ 실행이다. 최근 취업난과 고용불안으로 삶이 더욱 빡빡해지고 있는 이런 시점에 ‘삶 가꾸기’야말로 꼭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삶의 가치를 높이는 방안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건강가정지원 전문기관의 ‘워킹맘(대디)를 위한 대면그룹상담’, ‘일과 삶의 균형을 위한 실용교육’ 등 실제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가족문화개선 프로그램은 삶의 질을 높이는 좋은 방안이 될 것이다.
셋째, ‘이웃 가꾸기’이다. 가정의 행복은 공동체로 확대되어야 한다. 이웃 나눔을 실천하고 세상과 소통하는 다양한 활동들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책 제작지원’, 지역 독거 어르신들을 위한 ‘행복도시락 배달’, 아프리카 지역 신생아를 위한 ‘사랑의 모자뜨기’ 등 ‘사랑을 나누고, 행복을 더하는’ 이웃 가꾸기는 내 일과 삶 뿐만 아니라 사회 발전의 밑거름이 될 것이다.
5월의 신록처럼 생장하고 번성하는 것은 모두 부드럽고 유연하다. 굳어진 문화를 바꾸는 일은 쉽지 않지만, 문화를 유연하게 바꾸지 않는다면 밝은 미래를 기대하기 힘들다.
‘신경가소성(뇌가소성)’이라는 개념이 있다. 우리의 뇌가 태어날 때부터 고정된 것이 아니라 뇌의 신경망이 끊임없이 재배선되어 불가능이라 불리는 것들이 현실화될 수 있음을 말한다. 의식을 변화시키면 행동이 달라지고, 이러한 매일의 변화된 행동이 축적되면 새로운 현실을 창조할 수 있으며, 문화도 자연스럽게 바뀔 수 있다.
지난 4월 19일에 내가 재직하고 있는 부산병무청은 연제구건강가정․다문화가족지원센터와 일과 가정이 양립하는 가족친화적인 직장 분위기 조성을 위해 업무협약을 맺었다. 가족과 함께하는 체험 프로그램, 워킹맘(대디)를 위한 대면상담 등 가족친화 프로그램을 통해 일과 삶에 지친 심신 치유로 삶의 활력을 찾아가는 직원들을 보면, 이러한 가족친화 프로그램이 많은 가정으로 확산되어 건강한 사회가 실현되기를 기원한다. 가정이 건강해야 사회가 건강하다.
건전한 문화와 가치관을 가진 가정이야말로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지탱하고 유지하는 초석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2016년 5월 25일 제76호 1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