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5월이면 가정의 달이 찾아와서,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부부의 날이 연속 우리를 기쁘게 하고, 잠깐 잊었던 가정의 의미를 깨닫고,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한 달을 보내고 있다.
이미 인생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80이 넘은 노인이 된 나이지만, 발랄하고 청초한 어린아이들을 볼 때면, 꼬집고 만지고 터치하고 싶은 그들이지만, 세상은 변하여 바라만 보아야 하는 현실은, 쉽게 아이들에게 머리 손질은 꼰대 노인의 추태가 되고 만다.
지금 우리가 살고있는 세상이 날로 각박하고, 남을 믿을 수 없으며, 서로가 시기, 질투, 미움, 원망, 저주가 팽배한 어둠의 사고가 지배하는 자기 이익주의에 매몰된 논리 앞에, 법전 스님은 “번뇌 속에 푸른 눈을 여는 이는 석가모니를 볼 것이요, 사랑 속에 구원을 깨닫는 이는 예수님을 볼 것이다.“고 설법 하셨다.
그렇다. 지금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어린아이들과 같이 천진난만 순수한 그들이 되었을 때, 그토록 빌고 바라던 부처는 자연이 내 속에 찾아오고, 너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 하시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선한 사마리아인에게, 예수 구원의 은총이 찾아오는 것이다. 방정환 선생은 이미 어린이날을 만드시고, 어린이가 자유롭게 뛰어노는 세상에서 미래의 희망이 보인다고 하시며, 바로 그들이 미래의 재산으로 찾아오는 진리를 이미 알고 있었다.
세상은 변하여 우리 사회는 초·고령사회가 되면서 노인들이 지하철 등 어느 곳에서 다수를 차지하고, 100세 시대를 구가하면서, 정년의 삶이 그리 순탄하지를 아니하다. 공부하고 취직하여 겨우 30년을 직장에서 활동적 삶을 지내다 보니, 60세 정년이란 굴레에서, 아침 눈 뜨면 일어나 오늘 무엇을 할까? 고민하는 나이가 되어 집을 나서지만, 마땅한 일거리가 없다. 한 달 백만 원짜리 일자리를 찾아보지만, 모두가 자동기기로 변화되어 하루 공사판 노가다 자리가 혹시나 하지만, 그곳에는 주민등록증 제시로 발길을 돌린다.
건강도 점차 자신을 잃고, 약봉지는 호주머니에 잡히고, 앞으로 살아가야 할 30년이 먼 산 같이 높기만 하여, 9988234가 아니라, 당장 내가 건강해야 아내와 자식들이 편한 삶을 살아 갈수 있는데, 누가 내 수명을 장담하라. 일전에 그토록 사랑받던 근육통 뽀빠이 이상용 씨의 죽음에 쇼크가 컸다. 입담 좋고, 마음씨 고운 씩씩한 그도, 81세 나이로 갑자기 병원 다녀오다가 길에서 쓰러져 운명하셨다. 당뇨 지병이 있었다니 저혈당 증세인지 모르겠다.
인생의 죽음이란 아무도 그때를 모른다. 어디서, 어떻게, 죽음의 그림자가 찾아올런지 모르니, 그래서 준비하라고 웰·다잉 교육도 하고 있지를 않는가. 아무리 많이 배워도 죽음 앞에는 장사가 없다. 진시황제는 불노초(不老草)를 구하려 남해까지 왔다는 전설같은 얘기가 있지만 그도 50을 넘기지 못했다. 일본의 “80세의 벽”의 저자 와다히데키는 “나이듦을 받아들이면서 불필요한 인내는 하지 않는다. 그리고 할 수 있는 일을 현명하게 지속한다. 이것이 내가 발견한 건강하고 행복한 노후를 보낼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다.”고 밝히고 있다.
105세 시대를 살아가는 김형석 교수는 “지금 여기 내가 숨 쉬고 있는 것은 사랑이 있었기에 나는 행복하다.”고 하신다. 또한 “신체는 늙어가기 마련이다. 70대는 해마다 늙더니, 80이 되니까 달마다 늙는 것 같았는데, 90이 넘으니까 날마다 늙는 것 같다.” 는 말씀을 하신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여 정서적 젊음이 그토록 오랫동안 글을 쓰고, 강의를 하시니 존경받을 스승이요, 우리의 삶의 멘토가 되시고 있다.
인생의 삶을 살아오면서 70대 초반에 전라도 송광사를 찾은 적이 있다. 기독교 모태 신앙인 이지만 법정스님의 글을 읽고 “무소유의 길”을 찾고 싶어 혼자서 차를 몰았다. 3시간 반 정도의 먼 길이었지만, 청빈으로 수도하시며 걸어온 발자취를 조금이나마 느껴보는 여정은, 나로 하여금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함을 깨닫게 하는 순간이었다. 진짜 나를 찾는 길은 항상 자신에게 엄격하게 다스리며, 언행일치의 삶의 길을 보여준 수도자의 수행에, 바로 지금, 여기, 이 순간, 최선을 다하는 행복을 보여주신다. 가정의 달을 보내며 그래도 한 줄의 기억되는 하루가 있음을 감사하며, 신록의 푸르름이 가득한 행복한 세상 오기를 기도하여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