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영화관에서 상영되는 영화들을 보면 여려 형태로 관객들에게 호응받는 스토리가 천태만상으로, 연령과 성별로 나타나는 반응은 각양각색이다. 대체적으로 희극적 요소는 공히 웃고 즐기는 것이 공통이지만, 역사적 내용이나 시사성 있는 영화는 관람객들의 지적 수준이나 전문성에 따라 각각 다른 해석으로 영화를 평하기도 한다.
불후의 명작영화는 모든 이들이 오랫동안 기억하고 또 보고 하면서 명장면을 잊지 못한다. 그 중 ‘벤허’ 영화 속에 아주 절친한 두 주인공 ‘메살라’와 ‘벤허’가 죽는냐, 사는냐 하는 생사의 갈림길에서 달리는 마차에서 불꽃 튀며 열연하는 장면이, 아직도 다시 보고 싶고 흥분했던 그 순간이 좋았다.
이제 시대가 초·고령사회로 접어들면서 노인과 연관된 영화가 자주 등장한다. 일전 상영된 ‘소풍’이 그 예로 80이 넘은 두 노인(김영옥, 나문희)이 등장하여, 인생 황혼기에 애증과 사랑을 나누며 나누는 대화에서, “코에 호스를 끼우며 연명 치료하는 지옥보다 차라리 죽는 것이 현명한 삶이다”는 자조적인 인생 마무리를 보여주고 있다. 인생은 늙으며 질병의 고통이 찾아오고, 고독의 삶이 더욱 자신을 외롭게 하여 누구나가 존엄한 죽음을 모두가 원한다.
죽음에는 고독사, 존엄사, 안락사, 자연사로 구분되어, 인간은 평균수명을 넘지 않아도 우리의 운명은 아무도 그날을 알지 못한다. 그러기에 우리는 항상 죽을 준비를 해야 하지만 특히 노인들은 마무리 인생계획을 서서히 해야 한다. 인간의 삶은 너무나 귀하고 존엄한 가치이기에 마지막 생명이 다 할 때까지 최선을 다하여 지켜나가야 한다.
2018년 우리나라도 존엄사법이 제정되어 마지막 생명의 마무리를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본인이 결정토록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에 200백만 노인이 가입되었다.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는 의료진과 가족이 동의하는 ‘연명의료계획서’에 의해 무모한 수명연장이 아닌 존엄한 죽음을 지향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에 외신으로부터 안락사 죽음 소식이 자주 등장한다. 안락사가 허용되는 나라는 서구의 네널란드 벨기에 스위스 등 11개국에서 허용되는 제도로, 2019년 호주과학자 104세 된 ‘데이비드 구달’박사가 약물이 주입되는 안락사를 선택했다. 어떻게 자기 죽음을 3천만 원이라는 돈을 지불하고, 한 생을 마침은 우리로선 이해가 안 된다. 여기에 ‘다그니트’라는 전문 민간단체가 있어 이를 대행하는데 놀라운 일은 우리나라 사람 32명이 신청을 했다는 소식이며, 더 나아가 우리나라에서 조력자살 대신 ‘조력존엄사법’제정에 70%가 동의하는 움직임에 놀랄 울 뿐이다.
근래에 일본영화 ‘플랜75’가 제75회 칸영화제에서 황금 카메라 특별상을 수상하였는데, 이 영화의 스토리가 국가가 안락사를 권한다는 내용이다. 일본은 노인인구가 30%를 넘어 노인천국나라이다. 넘쳐나는 노인으로 인하여 재정이 압박되고, 그 피해는 전부 청년세대와 갈등 심화로 이어져, 이를 전제로 국가가 더욱 노인의 문제를 진솔하게 논의하는 계기를 마련하여, 미래가 밝아지기를 원하는 취지로 고령자의 안락사를 국가가 돕는 플랜을 시행한다는 내용의 영화이다.
그러나 끔찍한 발상으로 국가의 발전과 사회의 안정된 토대를 이룬 노년세대를 아무리 삶이 힘들고 병들어 사회에 기여 못하고, 국가의 재정을 축내는 집단이지만, 성경은 “인간의 한 생명은 천하보다도 더 귀하다” 말하고 있고, 하늘이 내려준 가장 존엄하게 대우를 받아야 함은, 유엔의 노인 5대 원칙에도 분명히 명시되어 있다. 노인들의 마지막 삶을 위해 국가는 최대한 지원과 돌봄이 필요한 것으로, 인생의 마지막을 쓸쓸히 보내며, 질병의 고통 속에서 하루가 지옥 같은 삶에서 미래가 보이지를 않는 절망감이 밀려오면, 사람은 누구나 죽기를 원하지만, 우리 사회가 그들을 돌봄은 바로 국가의 할 일이다.
국가 존립의 명제는 국민의 안전과 보호이다. 초·고령사회가 내년이면 진입되는 현실에서 노인들은 어떻게 남은 여생을 아름답게 보낼 것인가에 대한 세심한 지원계획이 필요하다, 건강하지 못한 200만 명에 대한 의료적 지원시스템 보완과 건강한 노인 800만 명에 대한 평생교육의 강화로 자존감 살려주면서, 우리 사회에 기여하는 나눔과 봉사의 가치 있는 마무리로 존엄한 삶을 향해 달려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