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는 그냥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서로가 서로를 도와야 지구가 돌아가는 것이다. 대통령도 국무총리도 있어야 하지만 어머니도 아버지도 딸도 아들도 있어야 세상이 이루어진다. 서울역에서 부산역에 도착한 KTX가 정시에 다시 서울로 출발하려면 기관사가 있어야지만 눈 깜작할 사이에 승객들이 버린 음료수통 등 쓰레기를 재빠르게 청소해야 할 숙련된 미화원의 역할도 중요하다. 이렇게 서로가 서로를 도우지 않으면 세상이란 기차는 멈춰 설 수밖에 없다.
정형외과 전문병원에 수술 전문의 아래는 전문 의사를 바늘과 실처럼 뒤따르는 수간호사 또 그 아래 보조하는 간호조무사가 있어야 수술 뒷바라지를 할 수 있다. 일단 수술이 끝나면 마취가 아직도 덜 깬 환자를 병실로 옮기는 것은 남자 간병사의 업무 중 하나다.
환자가 입원실 침대에 눕혀진 뒤부터는 요양보호사가 끊임없이 환자의 손발이 되어 움직인다. 수술환자들의 대소변 기저귀처리 피고름을 받아 처리하는 역할을 하는 요양보호사들을 ‘여사’들이라고 부른다. 요양보호사는 낮 밤을 가리지 않고 환자의 뒷바라지를 한다. 이 ‘여사’들 없으면 수술환자들의 고통을 처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밤중 잠깐 환자 침대 옆 작은 간이침대에 구부리고 누웠다하면 또 누군가가 “권 여사님” “백 여사님” 다급하게 부르면 10에 10번 얼굴 한번 찡그리지 않고 환자 곁으로 다가간다. 휠체어를 태우고 화장실 안으로까지 가서 일을 보도록 돕는다. 천사들이 따로 없다. 이들이 바로 천사들이다.
수술 뒤 장기 돌봄이 필요한 요양병원에서도 이 ‘여사’들의 역할은 크다. 요양병원에도 의사 간호사를 이은 ‘여사’들이 없으면 오아시스 없는 사막처럼 기능은 멈춰 선다.
요양보호사는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전문 간병인이다. ‘여사’라는 이름이 부르기 편해 붙여진 명칭 같다. 국민 건강 의료 보험체계가 기능을 보완하면서 통합 간병사제도도 생겨 한 요양보호사가 여러 명을 돌 볼 수 있어 병원비가 줄어드는 이점도 있다. 환자를 요령있게 전문적으로 돌보는 요양보호사를 다섯 자가 길어 부르기 불편하면 요양사 또는 보호사로 부르면 어떨까. 일하는 직업인을 두리뭉실 ‘여사’로 부르는 것은 정확한 명칭을 얼버무리고 일에 대한 자존심을 뺏는 것이나 다르지 않다.
‘여사’들로 불리는 요양보호사가 24시간 가동하기 때문에 환자 가족들은 안심하고 각자의 일을 볼 수 있다. 집안일 아이들 챙기고 또 직장에 나가야 하는 처지에 환자 옆에 장기간 머물 수는 없다. 환자가 갑자기 물 마시고 싶을 때 물도 한 모금도 스스로 못 마시는 환자도 많다. 기저귀도 갈아줘야 하고 분비물로 더러워진 옷도 갈아 입혀야 한다. 죽이나 밥도 떠먹여 주어야 하는 환자도 숱하다.
힘들고 냄새나는 이런 일들을 누가 감당할 수 있는 ‘여사’를 만들어 아픈 환자들 옆에서 밤을 새우면서 돌보게 만든 이 직종도 혹시 하느님이 만들지 않았을까. 얼굴엔 늘 웃음을 머금고 있다. 한밤중 통증으로 잠 못 이루다 부르면 얼른 옆으로 와 주는 ‘여사’님을 보면 마치 엄마 같다. 돈 받고 일하지 않느냐고 하겠지만 날마다 몸부림치는 환자를 돌보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복지업무에 대한 이해와 남다른 따스한 마음을 가진이라야 가능할 것 같다.
나이 들면 다치기도 한다지만 친구하고 저녁 잘 먹고 집으로 돌아오다가 울퉁불퉁한 길 보도에 걸려 넘어져 병원 신세를 지게 됐다. 가로등 불빛이 희미하고 보도가 바로 정비되어 있지 않아 넘어진 것이다. 그것도 운이라면 어쩔 수가 없다. 병실에 누워 있으면 꼭 무덤 속에 갇혀 있는 것처럼 답답하다. “와와 와”하고 큰소리로 외치고도 싶다. 파란 하늘도 보고 싶다. 싱싱하게 물오른 푸른 숲도 보고 싶다.
이럴 때 다가와 “좀 기다리세요. 참아야지. 잘 나아가고 있어요.” 달래고 격려해 주는 사람들이 바로 ‘여사’들이다. 여사들이 너무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