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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시론

잘못된 지도자가 부른 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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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당시 선조의 신임을 받고 있던 장수 이일(李鎰)은 상주에 머물며 침입에 대비하고 있었다. 우리 모두 알다시피 당시 왜적은 아무런 저지도 받지 않고 파죽지세로 북상중이었다개령사람 하나가 와서 이일에게 적들이 코앞까지왔다는 정보를 전달한다

이를 믿지 못한 이일은 민심을 현혹시킨다는 이유로 목을 베려 했다. 이에 개령사람이 대꾸한다. "내말을 믿지 못하겠거든 잠시 동안만 가둬 두고 기다려보라. 내일 아침에도 적이 이곳에 오지 않으면 그때나를 죽이라." 척후병조차 없었던 이일은 적이 지척임을 꿈에도 몰랐다.  

이일은 날이 밝자마자 적의그림자도 없으니 거짓이 분명하다며 참수를 집행해 버렸다. 그 직후에 왜적의 조총이 불을 뿜기시작하자 이일은 말을 버리고, 옷을 벗고, 머리를 풀어헤친 채 알몸으로 달아나목숨을 건졌다지휘관이라는 자가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 미친 사람 행세를 한 것이다이일의 상관인 신립(申砬)의 지휘력도 기막히긴 마찬가지였다. 충청을 방어하던 신립은 이일의 패전 소식을 듣자 낙담해 천혜의 요새 조령을 버리고 충주로 돌아오고 말았다

신임하는 부하가 들어와 적이 이미 조령을넘었다고 보고하자, 신립은 망령된 보고로 진영을 동요케 했다며 참수해 죽였으니 이일의 행동과 다를 바가 없었다이때 적은 10리 밖에 진을 치고 있었다진격해온 왜적을 맞은 신립은 강물에 뛰어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를 지켜보던 병사들마저 지휘관을 뒤따라 강에 투신시신이 강을 가득 메웠다고 한다

혼란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가장 기막힌 운명을 맞은 인물을 꼽자면 경상도 방어사를 지낸 무장 신각이었을 것이다. 김명원의 부장(副將)인 신각은 양주에서 민가를 약탈하던 왜적을 잡아 60명을 참수하는 전과를 올려 임진왜란의 첫 승리를 올린다. 감격한백성들은거리로쏟아져 나와 환호성을 올렸다

지금의 우리나라를 둘러싼 환경은 그때 못지않게 험악하다국제적으로는 총성없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데, 우리 내부적으로는 사회적 갈등이 겹겹이 쌓여 국가가 나아갈 길을 찾지 못하고 있다. 지금 우리도 현명하게 역경을 헤쳐나갈 지휘관을 찾아야 한다. 국가적 위기가 닥친다면 국민을 단결시키고 난관을 뚫고 나갈 지도력을 확보하고 있는가

지휘자가 어리석으면 국민이 대가를 치르는 건 고금에 예외가 없다3월 우리는 새로운 대통령을 선출하게 된다. 어떤 지휘자를 선택해야 다가오는 위기에 대응할 수 있을지 모두 깊이 생각해야 한다.

류성용은 징비록에서 후손들의 경계를 위해 책을 쓴다고 밝혔다. 역사가 반복되는 건 인간의 망각과 어리석음 때문이다. 그래서 430년 전 교훈을 다시 한번 살펴본다.

 

                                                                                             [2022년 1월 21일 제140호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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