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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시론

누나와 같은 부드러운 리더십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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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박근혜대통령의 얼굴에서 미소가 보이지 않는다. TV에 비치는 대통령의 모습이 우울하게 느껴진다. 세월호 사건과 그 유족들, 지리멸렬한 야당이라는 큰 벽앞에서 국정운영의 좌절이 자신을 괴롭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4월 세월호 사건이후 국회는 휴업상태다. 그래도 법안 개정을 돈과 바꿨다는 동료의원을 위해 방탄 국회를 열어 목적을 달성했다. 세월호 유족에 빌붙어 술을 마신 국회의원은 대리운전기사에게 “너는 내가 누군지 알아” 큰소리 쳤다. 일 안해도 보너스까지 챙겼다. 국민 알기를 바지저고리로 아는 모양이다.
 
정치실종으로 국가는 위기에 섰다. 도덕률의 추락이 몰고 온 정신적 공황이 사회에 어두운 그림자를 내리고 있다. 막말과 욕설, 모독과 우롱이 독버섯처럼 판을 친다. “x발, 이런 개 같은 놈들이 충성하니까 저안에 있는 x도 똑 같은거 아냐..” 청와대로 가려다 제지당한 유가족의 입에서 나온 쌍욕이 도를 넘었다. “대통령이 연애했다는 것이 거짓말이라 생각합니다” 설훈이란 야당 국회의원이 대통령을 이렇게 모욕했다. 일본 산케이 신문은 대통령을 모독하는 기사를 실었다. 전에 없이 대통령이 비인간적 언어폭력에 내몰리는 상황이 된 나라다.
 
얼마 전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 대통령이 직접 나섰다. [국민을 대표하는 대통령에 대한 모독은 국민에 대한 모독이다. 국가의 위상 추락과 외교관계에도 악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얼마나 황당했으면 대변인을 제치고 스스로 응수했을까. 이해는 된다. 그렇지만 국가 최고 지도자로 국민을 보듬고 또한 섬겨야하는 대통령의 자리에서 이런 가파른 대응이 어쩐지 편치않게 들린다.
 
보다 못한 한국여성단체협의회가 [대통령 모독행위를 근절시켜 대한민국의 위상을 바로 세우자]는 성명을 발표 했다. 64개 단체가 소속된 여협은 대통령에 대한 막말은 [아직도 우리 사회에 팽배한 여성비하라는 고질적인 성차별의 망령이 주범]이라고 성토했다. 여협 회원들의 외침이 메아리로 울리기만 해선 안 된다. 사정은 다르지만 박대통령의 말에서도 거친 표현이 가끔 있었다는 지적도 일었다.
 
“진돗개가 한번 물면 살점이 완전히 뜯어져 나갈 때까지 안 놓는다고 한다... 우리는 진돗개 같은 정신으로해야 한다” 또 연초 회의에서 “쓸데없는 규제는 우리가 쳐부술 원수... 제거하지 않으면 우리 몸을 죽이는 암 덩어리..” 신문에도 방송에도 그대로 전달된 말이다. 대통령의 스피치라이터는 누굴까.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어 가는데 순화된 언어의 역할이 얼마나 큰지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대체로 정치의 속사정이 어떻게 얽혀 가는지 살기 바쁜 국민들은 잘 알지못한다. 하지만 세월호 사건 당일[7시간의 공백]을 두고 대통령이 집무실에 있었느냐의 야당의원 질문에 김기춘 비서실장의 답은 기 막힌다. “대통령의 위치에 대해선 내가 알지 못합니다.” 위기상황임에도 대통령이 비상대책본부나 현장에 즉각 나가도록 하지 못한 비서실장의 책임은 크다. 그도 모자라 대통령의 소재를 모르다니. 방송을 듣는 순간 [어찌 저런 대답을] 낭패 났다는 생각이 얼핏 스쳐갔다.
 
대통령은 관저에 있었다고 한다. 집무실이 아닌 관저에 있었다면 문제가 될 것 같아 그렇게 말 했다고 한다. 바른말을 바른대로 못 할 만큼 청와대의 경직된 분위기를 미루어 짐작케 한다. 모르긴 해도 청와대의 분위기는 늘상 냉랭하게 비친다. 조용한 성품, 적은 말수, 빈틈없는 성품으로 다듬어진 대통령에게 누구나 긴장할 것이다. 장관도 만나는 것이 어렵다고 들린다. 다정다감하게 주변사람들을 다독이고 보살피는 부드러운 어머니를 보고 자라온 대통령이다. 바로 그것이 요즘 말하는 [소통]의 요체일 것이다.
 
대통령에게서 가끔이라도 누나 같은 푸근함을 느낄 수 있다면 청와대의 분위기는 한결 누그러질 것이다. 권위보다는 부드러운 리더십이 시대의 요구다. 귀소권, 수사권 관철보다 먼저 대통령 누나를 만나 함께 식사라도 했다면 어떤 유족에게는 용기가 되고 격려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좌절과 절망, 고통의 심연에서 자기를 딛고 일어선 박근혜대통령이다. 앞으로 넘어야 할 높고 험한 산은 또 있을것이다. 폭 넓은 대통령으로서 냉철함과 함께 부드러운 리더십이 함께 하기를 바라고 싶다.
 
[2014년 9월 23일 제56호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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