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rrent Date: 2024년 05월 02일

여유시론

'수상한 그녀'와 노인문제

 

 
 
전상수.png
책에서 읽은 이야기다. 60세가 된 한 노인이 중병에 걸렸다. 더 이상 가망이 없다고 의사는 판단했고 노인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주치의는 마지막 선물로 그에게 “당신은 최소한 30년은 더 사실 수 있습니다”라고 말해 주었다.
 
그러자 노인은 벌떡 일어나 외쳤다. “앞으로 삼십년 더 살 수 있다면 해야 할일이 너무 많소. 공부를 못한 게 한이었는데 공부를 시작해야지. 이참에 프랑스어도 배워야겠어.” 의사 말대로 그 노인은 30년 넘게 장수 했다. 버나드 쇼의 희곡 <메투셀라로 돌아가라>의 한 대목이다.
 
메투셀라는 성경에 나오는 인물 중에 가장 오래 산 사람으로 969년을 살았다고 한다. 버나드 쇼는 “인간을 현명하게 만드는 것은 경험이 아니다. 미래에 대한 기대”라고 말했다. 내일에 대한 희망을 버리기 때문에 늙는다고 한다. 30년 더 살것이란 격려 한마디가 공부하겠다는 희망과 건강을 회복시킨 원동력이 됐다.
 
오랜만에 본 영화 <수상한 그녀>가 노인 문제에 대해 다시 생각게 한다. 6.25 전쟁에 남편을 잃고 난전에서 갖은 고생을 하면서 아들 하나에 희망을 걸고 국립대 교수로 키워낸 욕쟁이 할머니와 가족의 이야기다.
 
아들자랑이 유일한 낙인 칠순 할매는 어느 날 가족들이 자신을 요양원으로 보내려 한다는 청천벽력 같은 사실을 알게 된다. 절망에 젖어 밤거리를 방황한다. 불빛이 요란한 ‘청춘사진관’에서 영정사진 한 장 찍고 나오다 버스차창에 비친 20대가 된 자신의 얼굴을 보고 경악한다. 할매는 20대 가수로 변해 폭발적인 인기를 모은다.
 
이런 상상이 줄거리를 이어가다 현실로 돌아온다. 웃음도 눈물도 나게 한다. 결국 영화의 중심에는 모든 것을 희생한 뒤 쓰레기처럼 가족에게서 버려지는 ‘노인문제’가 자리하고 있다.결코 남의 일이 아닌 것 같다. 요즘 대부분의 요양병원은 여러 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요양병원들은 환자를 돌보기 보다는 죽음을 기다리는 대기소 역할을 하는 곳이 많다. 정부 보조금 60만원 가족분담금 등 1인당 120만원 정도의 비용이 들지만 국가의 세부적 체크 등 관리가 되지 않아 돈벌이 수단으로 비쳐지고 있다. 가족에게서도 버림받고 요양병원에서도 비참한 대접밖에 못 받아서야 억울한 지난세월을 어디서 보상받아야 할까.
 
뼈 빠지게 고생해서 아들 딸 키웠건만 가진 부모에게서는 유산만 넘볼 뿐 효도를 하는 자식들은 드물다. 부모가 잘 살면 아파트 옆 동으로 이사 오고 아침마다 문안 전화가 걸려온다. 가난한 부모에게는 가뭄에 콩 나듯 걸려오는 아들의 전화 목소리는 무뚝뚝하고 불만으로 차 있을 뿐 이다.
 
지금의 60대 이상은 이 나라를 경제대국 반열에 올린 밑거름 세대다. 6.25전쟁에서는 나라를 지켰고 경제성장 가족부양에 허리가 휘도록 일한 공로자들이다. 더욱 기막힌 것은 국민을 대표해야 하는 정치인의 노인에 대한 사고방식이다. “ 60대 이상 70대는 투표 안 해도괜찮아요. 그분들은 이제 무대에서 퇴장할 분들이니까...” 그 말을 한 장본인은 지금 60대. 얼굴엔 세월에 눌린 주름이 졌고 기죽은 표정이 지쳐 보인다.
 
누가 뭐라던 자신의 인생은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 살아생전에 남은 집 한채마저 달랑 줘버린 부모는 자식에게 멀어 지게 마련이다. 자식이 더 줄 것 없는 부모를 성심껏 섬기는 경우는 드물다.
 
국가는 초고령사회로 간다는 통계를 발표한다. 정부의 정책용이지만 노인에게는 불안감을, 젊은이와 사회에는 노인 혐오감을 부추기는 분위기를 조성 한다. 중장기 대책없는 경고용 통계수치발표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내일도 해가 뜬다. 인생의 마지막 장을 꿋꿋하게 버티며 나날을 맞아야 한다.
 
80대 할아버지가 멀리 떨어진 보건소에 할멈 태워 가려고 자동차 운전시험에 합격, 지금 자동차를 몰고 있다. 괴테도 여든 둘에 파우스트 마지막장을 썼다. 이기대 산정에서 내려오다 소나무 숲길 너머로 보는 불타는 빨간 저녁노을이 이제는 예사로 보이지 않는다. <수상한 그녀> 처럼 20대로 돌아 갈 수 없지만 마지막 그날이 오기까지 오늘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다 가고 싶다.
 
 
[2014년 2월 21일 제49호 19면]

추천0 비추천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