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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시론

추석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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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추석은 정말 신나는 명절이었다. 오랜만에 새로 산 옷 입고 궤짝에 넣어둔 새 운동화를 그제야 신을 수 있는 날이었다. 생선전 산적 고구마전,언니들과 함께 둘러 앉아 빚었던 송편이나 맛있는 제사음식을 며칠씩이나 먹을수 있는 날이 추석이기도 했다. 모든 것이 풍부해진 지금에야 다 사라진 얘기지만 그때의 기억만은 선명히 남아 있다.
 
추석이나 설 명절 때 집안 웃어른을 뵈러 갈 때면 정성어린 선물을 드리는것은 오랜 미풍양속이다. 우리 어머니에게는 가야동에 사는 수정이 오빠네가 사가지고 오는 고무신 한 켤래와 흰 버선 두 켤레가 가장 소중한 선물이었다. 고종사촌뻘 되는 오빠네는 아마 생활이 넉넉하지 못 했던 모양이다. 어머니는 오빠네가 늦어지기라도 하면 “가야 아들이 올 때가 됐는데... ” 혹시나 추석에도 못 올 정도로 살기가 더 빠듯해 졌는지 걱정이 태산이었다. 어머니는 언제나 가야 오빠네 주려고 없는 용돈도 끼워두는 모양이었다. 내 기억으로 이 선물 목록이 바뀐 적은 거의 없다.
 
명절 때가 되면 평소에 신세를 졌거나 고마운 분, 존경하는 분들에게 선물을 보내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작은선물이라도 정성을 다해 서로 보내고 받으며 받은 것을 또 나누는 일은 흐뭇하다. 있으면 있는 데로 없으면 없는 데로 사랑과 정성을 담아 보내는 선물은 사람과 사람사이를 실타래처럼 이어 주는 윤활유가 된다.
 
벌써 오래전 일이다. 내가 몸담았던 신문사의 편집국장은 추석이나 설에 선물이 들어오면 모두 회사 내근 부서의 부장, 제일 끝자리 기자에게 다 나누어 줬다. 선물은 주로 설탕, 과일, 겨울 내의. 양말세트, Y셔츠, 상품권 등 이었다. 그 가운데 일제 정종이나 양주라든지 괜찮은 몇 개는 재껴 두었다가 신문에 귀한 글을 주시는 원로 선생님들에게 다시 보내어 주었다. 그분은 청빈함 인품 능력은 물론 언론의 제재가 많았던 시절 안기부를 상대로 기자들을 대변했고 단호한 주장과 함께 당당히 맞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고 했다. 그런 분위기에서 오랜 회사생활을 한 사람들도 명절이면 오가는 작은 선물들을 모아 모두 직원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가난했던 옛날엔 콩 한쪽이라도 나누어 먹는다는 말이 있을 만큼 서로 나누는 것은 큰 미덕이었다. 요즘도 작은선물들을 형제나 허물없는 친구에게 골고루 나누는 사람들도 있다. 맑은 냇물처럼 정이 흘러가는 흐뭇한 명절 풍경이다.
 
서울 어느 고위층집에서는 받은 선물을 못사는 친구에게 나누어 주기는커녕문도 열어 주지 않고 박대한다는 소문도 들려왔다. 썩어서 버리기까지 하면서 나누어 주지 않는 놀부 심성이 그 집 경비실에서 밖으로 새어 나온다. 야박한 세상, 마냥 그 자리에 있을 것도 아닌데 그걸 몰랐던 모양이다. 명절 선물도 현직에 있을 때 이야기지 현직을 떠나면 선물 수는 차츰 줄어든다고 한다. 부탁할 자리에 없으면 선물도 사라지는 각박한세태의 한 단면이다. 선물은 진정 보은과 사랑이 담긴 정성어린 것이어야 한다. 시인인 후배가 명절 때마다 시 한편이나 메모와 함께 보내오는 선물은 값진 정성이 담겨 있어 포장지를 뜯을 때면 행복감마저 느껴진다. 상자는 가볍지만 그 내용물은 무한하다.
 
올 추석 선물은 서울 예술의전당 미술관서 열리고 있는 이태리 트랜스아방가르드 화가 산드로키아의 화집과 치즈 스낵, 핫팩이다. 메모지가 들어 있다. “...그날 작품들을 휘익 보시고 가셨을 듯하여 보냅니다...”
 
농축수산물은 김영란 법에서 제외하자는 주장이 국회에서 일고 있다. 굴비,조기, 한우세트 등 고급품일수록 그 값은 엄청나다. 어쨌든 선물이 뇌물이 되는 부패한 사회는 고쳐져야 한다.
 
[2015924일 제6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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