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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시론

나는 천줄기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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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날 TV뉴스에 비친 전국 공원묘원 성묘광경을 보면서 몇 년 전 신문에서 스크랩해둔 인디언 전례 시 한편을 다시 읽는다. ‘나는 천줄기 바람’ 제목부터 참신 하다. 오랫동안 대자연의 공간을 거침없이 향유 해온 아메리칸 인디언의 정신세계가 눈에 보이는 듯 선하다.
 
내 무덤앞에 서지 마세요./ 풀도 깎지 마세요./ 나는 그곳에 없습니다./ 나는 그곳에서 자고 있지 않아요./ 나는천개의 바람입니다./ .....나는 곡식을 여물게 하는 햇볕입니다./ 나는 당신의 고요한 아침에 내리는 가을비입니다./나는 새들의 날개를 받혀주는 하늘자락입니다./ 나는 무덤위에 내리는 부드러운 별빛입니다./ 내 무덤 앞에 서지도 울지도 마세요./ 나는 그곳에 없답니다.
 
사후를 이렇게 담백하게 자연과 교감하는 인디언들의 맑은 영혼은 오랜세월 유교적 전통에 젖어온 우리에게 완전히 다른 의식 세계에 눈뜨게 한다.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으로 돌아가는 아름다운 법칙은 우주의 섭리. 이제 우리에게도 죽은 뒤 자연으로 회귀하는 자연장례문화가 서서히 뿌리내리기 시작했다. 수목장 잔디장 화초장바다장 등 자연친화적인 장례가 선호되고 있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부산의 한 대학 교수는 화장한 아버지의 유분을 아버지가 새벽마다 즐겨오르던 산길에 뿌리고 나머지는 자기집 정원 감나무 아래에 묻었다고 한다. 환경전문가인 그의 생각에 따라준 가족들의 앞서가는 의식이 돋보인다.
 
현재 우리나라의 장례는 화장이 71.1% 매장28.9%로 화장을 선호하는 추세. 1999년 묘지 난에 허덕이던 스위스가 수목장 숲을 처음 만든 뒤 독일 등 각국으로 빠르게 확산되기 시작 했
다. 우리도 2008년 법 개정으로 수목장을 도입했다. 올해 6월 보건복지부는 늘어나는 화장에 비해 납골당이 턱없이 모자라자 효과적인 대응 방법으로 전용 주택지내 친환경자연장을 또 법제화했다. 그런 가운데도 여전히 매장을 선호하는 계층이 많아 해마다 여의도 면적의 반 넘는 땅이 묘지로 바뀌고 있다고 한다.
 
등산길에서 넓은 공간에 화려한 석물로 장식한 새 묘지 옆을 지날 때가 가끔 있다. 권력과 부를 과시하기 위해 마을 뒷산의 환경훼손 국토훼손은 아랑곳 하지 않은 후손들이 아직 많은 것이 문제다.
 
중국경제의 초석을 놓은 등소평도 화장한 뒤 홍콩 앞바다에 뿌려졌다. 자기 집 정원 과수 밑에 묻으라는 당부에 과일을 못 먹겠다고 하자 유언을 바꾼것이다. 주은래 호요방도 화장을 선택했다. 중국은 현재 100% 화장을 시행하고 있다. 역시 위대한 지도자들이다.
 
200여 년 전 부터 국토의 잠식을 방지하기위해 유럽 등 선진국은 장례문화정착에 집중 했다. 영국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 등은 정부가 묘지정책을 세우고 행정지도에 적극 나섰다. 반 평정도의 묘지를 구획하고 지위나 부에 상관없이 모두 같은 크기로 묘지를 만들었다. 죽어서도 철저히 평등을 누리는 셈이다. 묘지는 도심 안에 녹지공간으로 꾸며져 유족들이 찾기도 쉽지만 자연 학습장, 연인들의 산책코스, 관광코스로 이용되고 있다.
 
파리 페르라세즈 묘지의 쇼팽, 샹송가수 이브 몽땅의 묘소에는 추모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거의 가10년 20년 시한부 묘장제도 자연장, 직선깊이에 4층까지 안장하는 가족묘지도 운영되고 있다. 지금은 화장이 영국70% 등으로 권장되고 있다.
 
우리의 공, 사설 공원묘지는 거의가 산 하나를 깎아내린 민둥산위에 만들어져 보기에도 을씨년스럽다. 죽은 뒤 천개의 바람, 햇볕, 가을비, 하늘자락,별빛이 되는 인디언의 의식세계가 차라리 부럽다.
 
[2013년 9월27일 제45호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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