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 대표 정승이라면 흔히 세종 때의 명재상 황희를 떠 올린다. 무려 24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정승이었고 그 가운데 19년은 영의정이었다. 황희정승은 온화하고 청렴한 이미지로 남아 있다.
하지만 그 사위의 횡포나 아들들의 부정은 물론 황희 자신도 제주 감목관시절 개관한 땅을 상당부분 차지하고 그 대가로 수령아들에게 벼슬을 주어 비난을 샀다고 조선왕조실록은 전하고 있다.
고려, 조선 통틀어 1000년의 긴 우리역사는 나라가 있어 준 것 만이라도 고맙다 할까. 백성은 거의 뒷전인체 임금을 둘러싼 권문 세도가의 갖은 부정부패가 망국의 큰 원인을 제공했다. 세종때도 벼슬자리를 뇌물로 산 지방수령들의 횡포로 노역을 이기지 못한 백성들이 고향을 버리고 떠돌이로 전락하는 사태가 비일 비재했다.
새삼 옛 역사를 반추해보는 것은 아직도 그 천년의 부정부패 악습이 새로운 사회의 탈만 바꿔 썼을 뿐 그대로 이어져 오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이완구 총리의 청문과정에서 제기된 문제는 많은 국민에게 절망감을 안겨 주었다. 새누리당 원내대표, 충남지사를 거친 괜찮은 정치인으로 국회청문회 통과는 문제없으리란 믿음이 강했다.
자신 만만한 준비로 ‘자판기 청문회’가 될 것이라고 하더니 ‘의혹 자판기’로 바뀌었다. 국민은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는 꼴을 당한 것이다. 이미 지난 일 테이프 돌리는 격이지만 가당찮다. “기자들 잡혀가 당해봐야./ 저 패널 막아 하면 즉시 메모 넣어 빼/ 이국장, 걔 안돼 하면 기자는 자기 죽는 것도 몰라..”언론 외압의 의혹은 녹음이 증명 한다.
본인과 아들의 병역 의혹, 분당 땅 투기 강남타워아파트 투기의혹 등 헤아릴수 없는 의혹이 아무리 세탁해도 때가 빠질 정도를 넘어 선 상태로 보인다. 정초 운동하러 바다가 보이는 산에 오른 사람들은 “이제 인종을 바꿔야 돼. 이대로는 맑아질 수 없어” “누가 뭐래. 높은X들 다 뒤져봐, 한도 끝도 없이 다 그 모양이지” 정부 관료나 정치인에 대한 땅에 떨어진 신뢰가 비참하게 들릴 정도다.
고위 공직자로서 오염된 가치관, 추락한 윤리의식이 과연 집권 3년차를 맞고 있는 박근혜정부의 책임총리로서 역할이 가능 할까. 지금 낮은 자세로 임하고 있다지만 결과적으로 ‘국격’에 손상을 입힌 체 이완구 총리체제가 출발한 것이다.
이 나라가 얼마나 썩어 있는지 그동안의 사건들만 봐도 알 수 있다. 청문회마다 맑은 향기가 풍긴 적은 없다. 오래 전 미국 법무장관 청문회에서 불법 이민 온 프에르토리코 가정부를 2주간인가 고용한 사실이 드러난 장관후보는 낙마 했다. 수많은 생명을 희생시킬지도 모르는 고리원자력발전소의 부품비리, 국민의 안보를 지킬 해군함정 통영함의 건조비리, 재벌들의 비리, 시민단체장의 비리 등에도 국가투명성을 살려 보려는 국가적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부정부패를 가늠하는 법원마당 천칭저울이 녹 쓴지는 이미 오래다. 사회지도층의 도덕 불감증은 국가 불신임,관료 정치인 불신임으로 연결되어 “죽자고 해도 안된다”며 절망한 서민들의 의식구조마저 오염시키고 있다. 거기다 국가별 부패지수도 부끄럽다. 10점(10점에 가까울수록 부패)에서 한국은 7.05점. 부패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시진핑 정부의 중국은 7.10점.양국이 어금버금하다. 홍콩 정치경제리스크 컨설팅(PERC) 2014년 조사 결과다. 역시 싱가포르가 1.60으로 1위. 일본이 2.08로 2위, 호주 홍콩 순위다.
로마제국의 멸망, 18세기 프랑스혁명,20세기 러시아의 10월 혁명도 왕족과 귀족들의 부정부패가 주요원인이었다고 역사학자들은 진단하고 있다. 어쨌든 신임 이완구 총리가 신뢰 회복으로 국민의 존경받는 총리가 되기를 바라고 싶다. 그것이 국가경쟁력을 높이고 나라를 발전시키는 길이기 때문이다.
‘국가가 개혁을 이루기 위해서는 정치나 행정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정직성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는 스웨덴의 경제학자이며 아시아의 부패문제를 걱정했던 노벨상 수상자 군나르 미르달의 주장이 새롭게 들린다.
[2015년 2월 27일 제61호 1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