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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시론

천경자...꽃과 영혼의 화가 세상을 떠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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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그때 나는 수습을 막 뗀 햇병아리 기자였을 거다. 문화부 부장이셨던 최계락(아동문학가) 선생님을 따라 중앙동 부산일보 근처 국제극장 2층 화랑으로 갔다. 들어서자 마자 완전히 이국적인 그림에 너무 놀라 그대로 서고 말았다. ‘이런 그림도 있나. 전혀 다른 새로운 세계다...’신출내기 기자의 눈에 비친 그림들은 경이였다.
 
잘 기억나지 않지만 외국의 어느 곳인지 연작 그림이 병풍처럼 한 벽을 차지하고 있었다. 화려한 색채, 에너지 꽉 차고 서정적인... 완벽하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산이면 산, 정물이면 정물 내가 본 그림 가운데서 이렇게 놀라움에 빠져 들게 한 것은 처음이었다. 그림 속 여인이나 풍경은 환상이었다.
 
천경자 화백은 윤기 흐르는 까만 비로드 투피스에 같은 천의 베레모를 쓰고 있는 멋쟁이셨다. 그때 그림들의 분위기와 천 화백의 이미지는 아직도 내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천경자 화백이 지난 8월 뉴욕 맏딸 집에서 “잠자는 것처럼 평안하게 돌아 가셨다“고 딸은 전했다. 아흔 한 살, 한 많은 슬픈 생애를 마감한 것이다.
 
생사논란, 위작 논란 등으로 마음고생이 많아 경황이 없어 늦게 전하게 되었다고 한다.그는 살아오는 동안 죽도록 일만 해온 습성 때문인지 잠시도 쉬지 못하고  놀지도 못하는 불행한 인간이었다고 스스로를 평하고 있다. 지나온 길이 평탄하지 않은 탓에 눈이나 비, 꽃과 친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첫 결혼에서 딸 아들 둘을 낳았지만 시어머니 구박 때문에 집을 나왔다. 그 이후 한 언론인과 사랑에 빠져 또 남매를 낳았지만 아내가 있는 그와 결별했다. 여동생마저 폐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 때문인지 그의 화집에 실린 많은 여인상은 머리에 꽃으로 장식한 화려한 관을 썼지만 거의가 먼 곳을 응시하고 유난히도 큰 눈은 미지의 슬픔이 실려 있는 듯하다.
 
‘생태’란 제목으로 뱀 35마리로 화폭을 가득 채워 화제가 되었다.뱀은 오직 자신의 인생에 대한 저항을 상징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뱀은 자기 자신이고 가까운 사람들이었다. 다시 한번 기회가 되면 에덴동산에서 이브를 홀려 인간으로서의 기쁨과 슬픔, 고뇌를 맛보게 했다는 창조의 요술사, 요기로운 지성의 뱀을 그려보고 싶다고도 했다.
 
천재 예술가들은 비극의 산물일까. 지난 6-9월초까지 서울 올림픽 공원 내 소마 미술관에서 전시회가 열린 멕시코의 세계적 화가 프리다 칼로도 절망의 세월을 극복한 비극적 예술가였다. 교통사고로 해먹에 매달려 그림을 그려야 했다. 남편인 멕시코 최고 화가 디에고의 계속되는 애정행각 때문에 이혼했다가 다시 1년 뒤 남편과 재혼한다. 남편이 프리다의 여동생과 관계를 갖는 등 죽음 같은 정신적 고통을 겪은 것이다. 유명 예술가들에게 끝없는 사슬처럼 감겨 있는 불행한 남녀 관계는 인간의 원초적 멍에인 것 같다.
 
글을 잘 쓰기도 했던 천화백은 ‘나 역시 쑥스러운 얘기지만 보통 사람들처럼 결혼도 하고 사랑도 하고 덧없는 곡절도 겪으면서 피곤하고 고독한 인생을 살아왔다. 그 고독함이 사무쳐 나이 들어서도 악몽에 시달리고 가위에 눌려 이불 속에서 뛰쳐나온 일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고 쓰고 있다. 고통에 잠겨 꿈과 이상을 찾아 먼 하늘로 날아가고 싶어진다고 했다. 그것이 화폭의 그림으로 탄생한 것이다.
 
고통을 극복하는 삶은 예술가에게는 위대한 작품의 계기가 된다.  인생의 고통과 절망을 극복하면서 자신의 한 많은 삶을 화폭에 던져온 그는 ‘슬픈 전설’을 마감 했다. 이승에서의 고통을 이제야 끝낸 천경자 화백의 명복을 빈다.
 
[2015년 10월 26일 제69호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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