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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시론

리 콴유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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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어촌을 아시아 최고의 부국으로 만든 리 콴유 싱가포르 전 총리가 91세로 타계했다. 5년 전 먼저 세상을 떠난 변호사였던 그의 부인 곽 걱추 여사의 곁으로 간 것이다.
 
싱가포르를 부자나라로 만들어 ‘국부’로 존경받던 그가 별세하자 “모기가 들끓던 아열대 섬을 번영하는 도시국가로 변화시킨 인물”이라고 유명외신들은 전했다.
 
그의 자서전 ‘내가 걸어온 일류국가의 길’ 앞쪽에 실린 빛바랜 사진 한 장이 유난히 가슴에 와 닿는다. 긴 갈대빗자루를 들고 거리를 쓸고 있는 젊은 시절 그의 모습이다. <1959년 11월, 깨끗한 싱가포르를 만들기 위한 캠페인. 나도 솔선수범하여 길거리 청소에 나섰다.>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영국 캠브리지 대학을 나온 변호사 출신 총리가 스스로 빗자루를 들고 거리를 쓸고 있는 모습에서 ‘’클린 싱가포르‘의 의지를 읽을 수 있다.
 
몇 년 전 가본 싱가포르거리에는 듣던 그대로 쓰레기도 담배꽁초도 눈에 띠지 않았다. 그는 부패 없는 투명한 사회, 정직한 국가를 만들기 위해 우선 도시 청소부터 시작하자고 동지들을 격려 했다. 그런 다음 이웃나라들과의 험악한 관계를 완화 시키고 내부 갈등도 해결 할 수
있다고 확신 했다. 국가건설의 기초는 깨끗한 정신력으로부터 출발한다고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싱가포르는 서울시와 거의 비슷한 636평방KM , 독립당시 1965년의 인구는 200만 명(현재 550만 명)의 작디작은 나라였다. 거기다 중국계를 중심으로 말레이, 인도 등 4개 종족 4개의 언어를 가진 복잡한 구성으로 되어 있었다. 영어를 공용어로 선택했기에 오늘의 발전이 가능 했다고 리 전수상은 회고 한다. 국가정책이 불통이 되면 어떤 목표도 달성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가난한 나라를 50년 만에 세계에서 가장 깨끗하고 국민소득 5만 달러가 넘는 부국으로 만든 것을 미국 전 국무장관 키전저는 누구도 ‘기적의 탑’이라는 평가를 부인 못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금융, 물류중심지로 부상하며 세계8위, 아시아 1위의 부국으로 탈바꿈된것은 공짜로 그저 얻어진 것이 아니다.
 
독재자란 비판 가운데서도 ‘아시아적가치’를 내세우며 국가적 목표를 위해 쏟았던 강력한 그의 지도력 때문이었다. 길거리에 침을 뱉거나 껌 씹기, 담배꽁초 버리기까지 벌금을 매기며 국가가 일일이 간섭한다고 ‘보모 국가’(Nanny State)란 비판도 있다. 하지만지저분한 아시아 다른 나라들을 여행해보면 그렇게까지 하고 있는 이유를 미루어 짐작 할 수 있다.
 
미국 하버드대학 교수가 리 콴유 와의 한 인터뷰에서 싱가포르는 이웃나라와 어떻게 다른가라고 물었다. “우리는 깨끗한 제도를 운영한다. 우리는 법을 지킨다. 우리는 합의나 결정을 준수한다. 그들은 그렇지 못했고 우리는 해냈다. 이것이 차이다“라고 대답 했다.
 
그는 탐욕스럽고 부패하고 타락한 아시아 지도자에게 환멸을 느꼈다고한다. 억압당하는 국민들의 자유를 위해 싸우던 지도자들이 점점 타락해가던 현상을 묵과 할 수 없었다. 그 때문에 그는 측근이나 고위직의 부정행위를 가차 없이 처벌토록 엄명하고 실천했다. 가장 가까운 친구의 독직사건에 어떤 배려도 하지 않았다. 결국 자살 하자 시신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투명하고 정직하고 효율적인 정부를 가진 싱가포르에 외국인 투자자가 믿고 몰리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무경험과 무지 속에서 싱가포르를 일류국가로 만든 그는 자신에게도 엄격 했다, “이웃에 방해 된다. 내가 죽거든 헐어 버려라”던 그의 집은 75년간이나 살아 무너질 듯 초라했다는 보도는 뭔지를 생각게 한다.
 
[2015325일 제6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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