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극렬한 반응과 항의가 잇따르고 일본의 우익단체 언론 등은 또다시 망언을 일삼으며자국내 여론을 모으고 있다. 12.28 위안부문제 관련 한일합의를 거론하며 우리 정부에 압력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2015년 12.28 한일합의는 피해 할머니들의 입장은 전혀 고려되지 않은 졸속합의다.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미래를 향해 발전적인 우호관계를 다져나가자는 허울좋은 명분에 비해 우리의 입장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고, 별 소득이 없는 외교였다.
지난해 8월 일본은 우리나라 여가부 산하 화해치유재단에 10억엔을 송금했다. 환율을 고려하면 우리나라 돈으로 겨우 97억여 원. 우리가 쓰나미 때 일본에 보낸 성금 155억원에 비하면 턱없이 성의없는 출연금이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70여년 한(恨)을 고작 97억 원으로 종결지으려하다니 참으로 씁쓸하다. 위로금 수준에도 못 미치는 돈으로 더 이상 위안부 운운 하며 비위를 거스리지 말라는 격과 다를 바 없다.
최근에는 한 지자체에서 피해 할머니도 모르게 가족 친지의 계좌로 위로금을 송금해 반발을 사고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피해자들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집행되고 있다. 팔구십, 망백의 노인들에게 1억원의 돈은 어쩌면 큰 돈일 수도 있지만 그들이 육체적 정신적으로 당한 고통에 비하면 보잘 것 없는 수준이다.
그런 졸속합의를 우리 정부가 저질렀다. 100여년 전 경술국치 을사조약과 다를 바가 없는 치욕의 협상이었다. 평화와 민주주의를 생각하는 미래세대들이 원천무효를 주장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진정으로 일본이 사죄를 하는 심정이었다면,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게 저지른 만행을 깊이 늬우치고 다시는 전쟁의 희생양으로 삼지 않겠다는 각오라면 만천하에 역사의 과오를 밝히고 피해 당사자들에게는 깊은 상처를 아물게 할 영혼있는 사죄와 배상으로 무릎을 꿇었어야 했다.
이러한 기본적인 절차없이 돈 몇푼 던져주면서 이제 없던 걸로 하자면 누가 인정할 것인가. 여성가족부 산하 화해치유재단도 참으로 옹색한 기구다. 지난 2016년 7월 28일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치유를 위해 여성가족부가 설립한 이재단법인은 일본의 위안부 합의 출연금을 받아 그에 맞는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만들었다.
기왕이면 지구촌 전쟁의 종식과 평화를 염원하는 기구, 이 땅에 아직도 끊이지 않는 전쟁으로 인한 여성과 아동 등 피해자들의 인권을 위한상징적인 기구로써 역할을 할 더 큰 의미를 담아 통 큰 기금을 출연토록 했으면 좋으련만, 일본의 옹졸한 합의를 어리석게 받아들인 제2의 국치와 다를 바 무엇인가.
평화의 소녀상 문제는 더 이상 일정부가 관여할 문제가 아니다. 계속적 설치여부와 관련해 법적으로 인정을 받으려면 조형물 등록과 같은 절차가 따르지만 이는 국내에서 해결할 문제이고 지자체나 우리 정부도 일본의 눈치를 볼 필요는 없다.
‘소녀상’은 과거에 사로잡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방해하는 걸림돌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다짐이고 평화의 상징이다. 소녀상이 왜 논란이 되어야 하는가. 잊어서도 잊을수도 없는 생생한 역사를 후세대들이 기억하고 다시는 치욕과 아픈 역사를 만들어가지 않도록 교훈으로 삼자는 상징물 인데 고작 10억엔을 받은 우리 정부가 앞장서 철거하고 ‘소녀상’을 핍박하려 한다면 일(日)의 내정간섭을 묵인하는 일이다.
이제 생존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은 고작 39명. 이름도 흔적도 없이 꽃다운 나이에 먼저 간 소녀들의 한은 어떻게 위로할 것인가. 형벌보다 더한 고통을 참다못해 죽어간 어린 소녀들을 무참히 구덩이에 파묻었던 것처럼 살아있는 역사마저 10억엔의 자루속에 쓰러담아 파묻어버릴 수는 없는 일이다.
휑한 도로위 빈의자를 벗삼아 쓸쓸히 앉아있는 곳곳의 소녀상, 꽁꽁 얼어붙은 소녀의 발끝엔 아직 바람이 차고, 시민들의 따뜻한 관심과 사랑이 털모자로 목도리로 간식으로 쌓이고 있지만 눈빛은 여전히 아프고 슬프다.
[2017년 1월 20일 제84호 1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