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빈의 공식 만찬은 언제나 백악관 스테이트 다이닝룸에서 이루어진다. 대통령이 주요연설이나 발표를 할 때도 반드시 이 장소를 사용한다.
2010년 1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미국 전역에 생중계 된 TV연설을 했다. 보름 전 크리스마스에 발생한 항공기 폭탄테러 미수사건의 조사결과를 설명하고 국정 최고 책임자로서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지 못한데 대해 국민에게 사과를 한 것이다.
“나는 책임을 비켜 가는 데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이번 사건을 통해 교훈을 얻고 실수를 바로 잡아 더욱 안전한 나라를 만들겠습니다. 최종적인 책임은 내게 있습니다. 대통령으로서 나는 국가와 국민을 보호해야 할 막중한 책임을 갖고 있습니다. 시스템이 실패 했다면 그것은 내 책임입니다”
대통령이 ‘그것은 내 책임’이라고 분명하게 사과 했다는 사실이 어쩐지 우리에게는 낯설다.
지난 22일 박근혜 대통령은 국토교통부 장관이 동남권 신공항 건설을 백지화, 김해 공항 확장으로 발표한지 하루 만에 갑자기 ‘김해신공항’으로 이름까지 바꾸어 말했다.
“앞으로 정부는 김해 신공항 건설이 국민들의 축하속에서 성공적으로 이뤄지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 정치적 계산으로 마감된 신공항 건설 백지화가 대통령의 선거공약 파기라고 들끓고 있는 영남권 민심을 뒤로 한 채 ‘축하’ 속에 건설을 이루도록 하겠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이해하기 힘들다.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현대사회의 최고의 위치지만 옛날의 왕과는 전혀 다르다. 논리적으로 국민을 설득시켜야만 국민들을 따르게 할 수 있다.
전문가의 분석에 의하면 오바마 대통령의 사과에는 프로토콜(protocol.의전)이 명확하다고 한다. 사과 장소는 주요 국정연설이 이루어지는 스테이트 다이닝룸이다. ‘사과의 형식’도 다르다.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은 전국에 TV로 생중계 됐다. 국민을 상대로 정중하게 직접 사과한 것이다.
신공항 공약 파기에 대한 박대통령의 사과 필요성을 묻는 기자들에게 청와대 대변인은 “어려운 문제지만 피하지 않았고 약속을 지켰다고 본다”고 했다. 안전성, 소음공해, 24시간 운영 등 어느 것 하나 충족시키지 못한 채 동남권 신공항을 무산시키고도 약속을 지켰다니 국민을 한없이 어리석은 존재로 아는 모양이다.
박 대통령의 진솔한 사과는 1300만 영남권의 응어리진 마음을 풀어주는 소중한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대통령은 “김해 신공항 축하속 건설...”을 이해 당사자인 영남권주민을 제쳐두고 민주평통 자문위원들과 ‘통일대회’를 갖는 자리에서했다니 미국대통령이 국민을 대하는 것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미국에선 큰 사건이후 국정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이 공식적인 채널을 통해 국민에게 직접 사과하고 ‘모든 책임은 자신에게 있음’을 분명히 하는 것이 전통으로 되어 있다. 역대 미국 대통령은 사과를 통해 위기를 극복하고 국면을 유리한 방향으로 바꿔 놓았다.
1961년 케네디 행정부의 최대 실패인 쿠바 피그만 침공 사건 때 케네디 대통령은 공식 기자 회견을 통해 침공을 계획한 정부의 실패를 자인했다. 한 기자가”왜 며칠 동안 국무부가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느냐”고 따져 묻자 대통령은 ‘승리했을 때는 자기 공이라고 나서는 사람이100명이지만 실패했을 땐 나서는 사람이 없다’는 속담을 인용한 뒤 “추가적인 발표나 논의를 한다 해서 책임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내가 이 정부의 책임자이기 때문입니다.”
민주주의의 선진국일수록 사과에 대한 국가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고 한다.
박대통령은 국무회의나 비서관 회의에서 국정의 중요한 일을 말하는 것보다 때로는 국민을 향해 직접 이야기하는 진지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10여 년간 추진해온 동남권 신공항 공약파기에 대한 박대통령의 사과는 PK, TK간에 패인 감정의 골을 치유하는 좋은 약이 될 수도 있다.
권위보다 국민을 위하는 진심이 필요하다.
[2016년 6월 24일 제77호 1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