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오랜만에 서면 백화점에갔다. 추석이 가까워서인지 백화점은 무척이나 붐볐다. 누군가 에스컬레이트 앞바닥에 커피를 쏟았다. 연신 사람들이 오가는 바닥이 희뿌연 커피 범벅이 돼버렸다. 젊은 여성이 휴지를 꺼내어 닦지만 적은 휴지로는 안 된다. 잠깐 사이에 또 누군가
가 커피를 쏟았다. 예삿일이 아니다.
몇 년 전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뉴욕거리를 테이크아웃 커피 컵을 들고 바쁜 걸음으로 출근하는 한 장면은 워킹우먼의 상징이었다. 요즘 스타벅스 등 미국 커피가 판을 치면서 종이나 투명 커피 컵을 들고 다니는 것이 젊음의 멋처럼 되어 있다. 하기야 청와대 비서진도 함께 푸른 구내 잔디밭을 거닐면서 어느 실장이 요즘 금지하고 있는 투명 커피 잔을 들고 느긋하게 걷고 있는 모습이 TV에 비쳤다.
환경차원에서 국민에게는 종이나 플라스틱 등 일회용 컵은 사용하지 말라면서 청와대 높은 사람들은 관계없는 것처럼 비쳤다. 이 나라에서 타인을 배려하는 착한 마음씨를 가진 사람은 거의 출세하기 어려운 모양이다. 국회에서 열리는 인사청문회를 봐도 남을 배려한 사람들이라곤 눈 닦고 봐도 없다.
이 정부 들어 첫 인사청문회가 위장전입 음주운전 논문표절 등 범법 투성이 성공한 사람들의 경연장 같더니 이번 개각 청문회에도 마찬 가지어서 청문회가 싫증난다. 이런 사람이 후보라니 국민들의 부아를 치밀게 한다. 위장 전입한 장관 아이 때문에 선량한 다른 한 아이 자리가 줄어든다. 이래서 아이들은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주의가 된다.
자기이익에만 빠진 상층부의 부패가 서로를 배려해야하는 마음마저 앗아가 버린다. 나라의 기본구조자체가 엉망이 되는 것이다. 좁은 섬나라에서 1억3천만의 인구가 살고 있는 일본은 ‘배려의 문화’가 성숙한 나라이다. 세계에서 청소가 가장 잘 되어 있는 깨끗한 나라라면 단연 일본을 들 수 있다.
일본은 도시나 농촌 어디를 가도 쓰레기가 눈에 띠지 않는다. 싱가포르도 깨끗하다. 이광요 수상이 깨끗한싱가포르 만들기에 솔선, 긴 빗자루를 들고 길거리 청소에 나서는 한편 부패를 없애기 위해 국가적인 강력한 정책을 쏟아부었기 때문이다. 일본은 나라 전체도 깨끗하지만 청소 매너도 세계 최고라는 칭찬을 받고 있다.
국제경기에서 이기든 지든 상관없이 일본 팬들은 ‘학이 머문 자리는 깨끗하다’는 말처럼 머문 자리는 언제나 깔끔히 치우고 떠난다. 나보다 남을 먼저 배려하는 ‘배려의 문화’가 빚어내는 정신적 전통인 것 같다. 지난 7월 러시아 월드컵에서 일본은 벨기와의 16강전에서 2:3으로 패했다. 그래도 일본 팬들은 눈물을닦을 겨를도 없이 관중석 구석구석다니며 미리 준비해온 쓰레기봉투에 페트병 캔 비닐 등을 담아 말끔히 청소했다.
일본 대표선수들도 라커룸 안까지 깨끗이 치워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경기에선 패자였지만 경기장에선 승자였다. 일본 축구 팬들은 세계 최고의 매너를 솔선수범 보여주었다”고 세계 언론이 격찬했다. 국제축구연맹(FIFA)도 공식 트위터에 “일본에 존경의 박수를 보낸다.”고 했다. 월드컵 뿐 아니라 각종 국제대회때 마다 일본 팬들이 만들어 내는 청소활동은 일본 국민의 이미지는 물론 국격을 높이고 일본 상품문화의 신뢰도마저 고양시키는 것 같다.
이와는 정 반대로 우리 청소년 야구팀은 9월초 일본 미야자키에서 열린 제 12회 아시아청소년 야구선수권 대회 결승에서 대만을 7:5로 누르고 승리했지만 일본 언론에 호되게 얻어맞았다. ‘왜 페트병을 치우지 않는가. 매너가 안 좋다’는 지적을 받았다. 5연승하자 선수들이 흥분하여 서로에게 물세례를 하고 페트병을 치우지 않은 것이다.
결국 대회관계자가 페트병을 치웠다지만 이기고도 매너 때문에 망신을 자초한 것이다. 일본은 세계 3번째 경제대국이다. 솔직히 고대는 우리문화가 앞섰다지만 일본에 배울 점은 너무 많다. 우리도 서로를 배려하는 정신과 정직성만 갖추면 일본이나 싱가포르처럼 국제 사회에서 칭찬받는 국민, 신뢰받는 나라가 될 수 있을 것이다.
[2018년 9월 14일 제104호 1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