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그룹 구본무 회장이 타계했다. 23년간 그룹을 이끌었던 구회장의 별세로 평소 그의 넉넉한 품성과 소탈한 이미지는 물론 혁신적인 정도경영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순위로 따져 한국 10대 재벌 가운데 4위의 총수라면 그 경제적 위상은 대통령도 부럽지 않은 자리라고할 수 있다. 대통령은 임기가 끝나면 바뀌지만 재벌 총수는 건강만 유지 되면 얼마든지 장기 집권이 가능 하다.
아직도 후진 정치형태 를 벗어나지 못한 한국엔 대통령이 기업을 살리고 해체시키는 권한을 행사한 적도 있지만 특별한 경우이다. 막강한 재력을 바탕으로 사회.경제. 문화 전반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 할 수 있는 재벌, 그 총수자리는 상상도 못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조직위에 군림 할 수 있는 위치인 것이다.
그런 재벌회장이 여의도 사무실에 망원경을두고 한강 밤섬에 날아다니는 철새를 관찰하는 탐조가, 말단 직원에게도 반드시 존댓말을 쓴 회장님, 약속 장소에는 언제나 20분 먼저 와 계시는 회장님... 법을 지키며 문제를 일으킨 적이 없는 회장님... 인터넷에 실린 찬사를 읽기만 해도 흐뭇하다.
사실 LG그룹은 부산이 그 산실이다. 광복이후 변변한 화장품이 없었을 때 서대신동 작은 공장에서 크림을 만들어 동동 북을 치며 팔러 다닌 것이 LG의 전신이었다. 값싸고 품질도 좋아 여성들에겐 인기였다. 60년대부터 전자제품을 개발해 재벌기업으로 올라선 럭키금성을 오늘의 글로벌 LG로 도약시킨장본인이 구씨가문 3세인 고 구본무 회장이었다.
LG의 정도경영은 창업주 구인회 회장의 기본 철학이었다. 삼성이 사카린 밀수로 기업을 키우려 했을때 럭키금성은 정 반대의 어려운 길을 선택했다. 창업주의 인품은 너무나 소탈 했고 훈훈한 인간미를 풍겼다. 작은 법도 위반 하지 않은 전형적인 양반 풍이었다.
창업 구회장은 국제신문을 인수하고 사원들에게도 따뜻한 정을 베풀었다. 어쩌다 불려 가면 깨끗한 기자가 되라면서 봉투도 쥐어 주었다. 해운대 암소 갈비집을 가다 운전기사가 자동차 금지 표지를 미처 보지 못해 들어가면 바로 오던 길을 되돌아가게 했다.
뒤에도 회사차가 두서너 대 따라 왔는데.. 식사자리가 없으면 볕 가리게도 없는 갈비집 마당 평상에 둘러앉아 간부들과 식사 하면서 신문 만드는 사람들의 얘기를 편하게 들어 주었다. 왜 신문을 맡았느냐며 닦달하던 롯데총수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 할아버지에 그 손자라 할까. 3대째 회장이 넉넉한 인품을 가진 것도 창업주 구인회 할아버지, 아버지 구자경 회장으로 내려오는 가문의 분위기가 성장하면서 몸에 베인 것일까. 구본무 회장은 73세에 생을 마감했다. 한국적인 장자 승계의 전통으로 40세의 아들이 LG그룹의 총수자리에 앉게 된다고 한다.
40세 재벌기업 총수도 첫 기록이다. 가족장으로 간소하게 2박3일의 장례를 치르고 평소 좋아하는 숲과 새 바람소리 천둥소리를 들을 수 있는 수목장으로 영원한 안식처를 정한도 멋있었던 구본무 회장 자신이었다.장자 경영승계는 우리 기업의 전통처럼 굳어져 가고 있다. 세계는빠른 속도로 변하고 우리 시장의 80%는 해외에 의존하고 있다.
이런 어려운 여건에서 재벌총수는 세계를 상대로 결정적 승부를 걸어야 한다. 과연 기업이 전문 경영인이 아닌 온실 형 혈족승계로 가는 하는 것이 정답일까. 대한항공 물컵 사건으로 다시 도진 재벌기업의 갑질이 재벌에 대한 이미지를 끝없이 추락시키고 있다.
세계제일의 부자 마이크로 소프트의 빌 게이츠, 워렌 버핏도 결코 상속 부자가 아니다. 모두가 자수성가형 부호들인 것이다. 기업경영의 뛰어난 판단력과 따뜻한 인간미, 대자연을 사랑했던 구본무 회장은 떠나면서도 재계에 많은 교훈을 남기고 있다.
[2018년 5월 25일 제100호 1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