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산은 아름답다. 잎 새 떨어진 나목들이 하늘을 인 능선은 젊은 날의 꿈처럼 가슴을 설레게 한다. 돌 뿌리에 차일세라 조심조심 발길을 옮길 때마다 나무 한번 쳐다보고 카랑한 하늘 한번 쳐다보는 그 쾌감은 무엇과도 비교 할 수 없다.
제자리에 선채로 움직이지 못하는 나무들은 찬바람과 겨울비를 맞으며 묵묵히 겨울을 인내하고 있다. 봄을 기다리며 잎을 피울 채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겨울이 오면 어찌 봄이 오지 않으리’ 다시 되뇌어 보는 셸리의 시구는 생기 가득한 숨결이 느껴진다.
겨울처럼 찬 우리 세상사에도 간간히 따뜻한 봄처럼 가슴을 훈훈하게 적셔주는 일들이 전해진다. 1월 중순 프란체스코 교황이 브라질을 방문하는 전용기 안에서였다. 식을 올리지 못하고 살고 있는 승무원 부부에게 즉석 결혼식 주례를 선일이다.
“결혼 하고 싶어요?”라고 교황께서 물었다. 여느 때처럼 흰 옷을 입고 땅 개비 모자를 쓴 80대의 교황은 얼굴 가득 웃음이 흐른다. 예 라고 대답한 신랑 신부는 둘 다 이 전용기의 승무원이었다. 8년 전 브라질 지진으로 결혼식을 올리지 못한 채 벌써 두 아이가 있다는 것이 교황께 알려진 것이다. 승무원 복을 입은 그대로 교황 앞에 선 부부, 기내의 모두는 감동의 순간을 나누었다.
황금빛 관과 성의 황금빛 긴 지팡이 등 교황의 상징처럼 이어져온 일체의 가식을 과감히 배격한 프란체스코 교황은 인간적 매력이 넘쳐난다. 바티칸에서 취임식 미사가 한참 생중계되고 있을 때였다.
난데없이 허름한 바지에 반팔 티셔츠를 입은 7세쯤 되어 보이는 까만소년이 교황 옆으로 바짝 다가갔다. 한 손에 성경을 든 교황은 다른 한 손으로 그 아이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아이는 곧 줄지어 서 있는 추기경들 사이를 유유히 지나 연단 아래로 내려갔다. 사랑의 참 의미를 말없이 전 세계인에게 보여준 아름다운 순간이었다.
교황은 이번 방문에서 ‘중남미 대부분 정치권이 병들어 있다’고 경고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참으로 인간적인 따뜻한 얘기는 지친 삶에 윤기를 더해 주고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된다.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 정책은 아파트 경비원들에게 감원, 근무시간 줄이기 등 적잖은 부작용을 낳고 있다. 울산의 한 아파트는 경비원들에게 일자리를 빼앗는 것보다 한 세대당 4천 원씩을 더 내기로 결의 했다고 한다.
한집 당 월 몇 천원을 더 부담해 힘겹게 살아가는 정년 후의 일자리를 그대로 보장해 주는 것은 야박한 세상인심에 오랜만에 들어보는 좋은 소식이다. 시장바구니에 콩나물 한줌도 더 넣어가려는 주부들이 나이 많은 경비원들의 직장을 배려하는 쪽으로 뜻을 모은 것이 봄을 느끼게 한다.
이달 초 타계한 영국의 일간 가디언 신문의 편집인을 20년간 지낸 피터 프레스턴(79) 전 국제 언론인협회 (IPI)회장의 부음 기사도 감동을 준다. “평생기자였던 프레스텐이 이번 주 마감 시간을 지키지 못했다”고 가디언은 애도 했다. 암 투병 중에도 지난해 12월 31일자에도 칼럼을 썼다니까 죽기 일주일 전까지 글을 쓴 것이다.
언론 자유는 민주주의의 한 축에 불과 하지만 언론 자유가 없으면 아무런 자유가 없다면서 언론인이 좌절하지 말고 주눅 들지 말라고 격려했다. 정권마다 언론을 억압하는 현실에 자기 신념을 지키며 끝까지 도전한 그에게 한없는 존경의 마음이 인다.
겨울은 춥고 나무는 떨고 있지만 그 속에 봄은 예비 되어 있다. 세상은 춥고 어지럽지만 훈훈한 일들이 우리 가슴속에 따뜻한 봄의 기운을 지피고 있다.
[2018년 1월 26일 제96호 1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