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전쯤 서대신동 구덕로터리에서 있은 일이다. 사과상자를 가득 싣고 달리던 작은 트럭에서 상자들이 떨어져 빨간 사과들이 도로로 주르르 흩어졌다. 지나가던 시민들과 어린 초등학생까지 10여명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사과를 주어 상자에 담아 차에 올렸다. 앰블런스 2대도 비상등을 켜고 멈추어 뒤따르던 차들을 막았다.
눈 깜짝하는 사이였다. 아무도 사과하나 가져가지 않았다. 사과장수는 고맙다고 연신 허리 숙여 인사하고 트럭은 떠났다. 시민들이 함께 한 아름다운 가을 정경이었다.
지난 10월 말 불국사에서 있은 한 기업인의 제에 참석했다. 부산여성 단체들을 오랫동안 후원했던 한국여성경제인협회 이영숙 전 회장 부군의 제였다. 90세로 생을 마감한 영가 천도제에서 흐뭇한 얘기 한 구절이 여운을 남긴다. 고인은 7,8년 전부터 친구 챙기기를 낙으로 삼았다한다. 친구가 북한산에 오르면 반드시 하산할 때 자기 집에서 식사를 대접했다. 10명도 40명도 좋다며 계속 식사초대를 이어 갔다.
한창 땐 너무 바빠 친구를 찾지 못했는지 모른다. 마지막엔 고향 영덕까지 내려가 친구들에게 식사 대접을 할 만큼 친구들을 소중히 섬겼다. 주지스님의 조사 중 눈물을 훔치는 두 어른의 모습이 사람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사학자로 ‘링컨의 일생’등 100권이 넘는 책을 펴낸 김동길 박사의 생일은 10월 2일. 차인인 허충순 시인은 생일 때마다 부산에서 서울까지 어김없이 올라간다. 생일상 메뉴는 언제나 변함없이 고명 없는 냉면과 빈대떡이다. 동치미 물에 고명 없이 말아주는 냉면을 당대의 대표적 시인 모윤숙은 ‘나체 냉면’이라며 즐겼다고 한다. 여기에 초대를 못 받으면 명사가 아니라고 할 정도로 학자, 시인, 화가, 정치인들이 참석한다. 아마도 소박하며 지성이 교류되는 부드러운 분위기였을 거다. 해마다 2,3백 명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1백여 명 정도가 다녀갔을 뿐이라고 한다.
누님인 이화여대 김옥길 총장 때 부터였다니까 60여년은 넘었다고 한다. 어머니는 평양에서 삯바느질과 같은 온갖 궂은일 하며 아들딸을 위해 젊음을 바쳤지만 ‘사람 집에 사람이 와야 한다.’ 는 신조로 늘 대문을 열어두고 사셨다고 한다.
유튜브 김동길tv에서 오랫동안 대통령부터 장관들, 권력자들을 거침없이 비판하는 90대 중반의 김박사는 국내외 많은 팔로우를 거느리고 있다. 고명 없는 냉면과 빈대떡의 생일잔치는 벼락부자들에게 내리치는 산사의 죽비 같다.
오늘 아침 배달된 신문 책 소개란에 실린 작은 기사 하나가 또 마음을 울린다. 경기 성남 ‘안나의 집’에서 20년 넘게 노숙인 들에게 식사를 대접하고 있는 이탈리아 출신 김하종 신부가 쓴 자신의 얘기 ‘사랑이 밥 먹여 준다’는 내용이다. 1987년 사제로서 첫 미사를 올리던 아침이었다.
아버지는 값비싼 시계, 어머니는 금 십자가 목걸이를 선물했다. 부모님은 ‘함께한 시간을 잊지 말라’ ‘언제나 사제답게 살라’고 당부한다. 가족과 함께 미사를 들인 뒤 아들은 선언한다. “저는 가난한 사람을 따르는 사제의 삶을 택했습니다. 값비싼 시계와 목걸이는 제 몸에 걸치지 않겠습니다.”
선행은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우리 사회에는 이런 선행이 잇따르고 있다. 선행은 정치인의 거짓 공약보다 훨씬 사회를 풍성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