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rrent Date: 2024년 11월 24일

여유시론

어머니 꽃구경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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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꾼 장사익의 노래 꽃구경을 들으면 왠지 눈물이 베어 온다. 피를 토하듯 독특한 노래 색깔이 잔잔한 슬픔의 안개 속으로 몰고 가는 것 같다.

어머니 꽃구경 가요/ 제 등에 업히어 꽃구경 가요./ ...어머니는 좋아라고 아들 등에 업혔네 ...산자락에 휘감겨 숲길이 짙어지자/...어머니는 그만 말을 잃더니/ ...한 웅큼씩 한 웅큼씩 솔잎을 따서/ 가는 길 뒤에다 뿌리며 가네./ 어머니 지금 뭐 하나요/ 솔잎은 뿌려서 뭐 하나요/ 아들아 아들아 내 아들아/ 너 혼자 내려갈 일 걱정이구나/ 길 잃고 헤맬까 걱정이구나.’

시인 김형영의 따뜻한 봄날을 장사익이 곡을 붙여 꽃 구경이란 제목으로 부른 노래다. 그 옛날 고려장 하기위해 노모를 업고 산으로 가던 아들 등에 업힌 어머니가 아들이 내려갈 때 길을 잃고 헤매 일까 솔잎을 뿌린다는 가슴 찡한 내용이다. 고려 시대 나이든 부모를 산에 버렸다는 설화가 소재지만 실제로 고려장이라는 말은 옛날 어느 자료에도 없다고 한다. 몹쓸 병에 걸린 사람들을 산막에 격리시킨 것은 나라마다 있은 것은 사실이다.

일찍이 하느님은 자신을 대신 할 수 있도록 어머니를 만드셨다고 유대교 경전은 전한다. 부모가 아니면 속 썩이는 자식들에게 하느님처럼 끝없는 사랑을 베풀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꽃구경 뒷 소절 아들이 아들아 내 아들아 / ...길잃고 헤맬까 걱정이구나.’ 모정의 극치인 이 소절이 더욱 가슴 아프게 한다.

내 어머니가 내게 가진 깊고 따뜻했던 사랑을 당연한 듯 받아 드렸을 뿐 제대로 효도하지 못한 지난날이 떠오른다. 젊었을 때 조선방직에 다니셨던 어머니는 공부 잘하고 착한(?) 나를 성공시키려고 마음속으로 끔찍이 애썼다. 그때 집안 형편은 말이 아니었다. 어머니 아버지가 모은 재산이 거의 다 없어져 생활이 어려웠다. 믿었던 내가 서울 A대학에 떨어지자 아무 말 없이 재수에 동의했다.

두 번째 시험을 치려고 마지막 정리 차 고향 서재에 가 있는 나에게 그 대학 다니는 집안 조카에게 부탁 S대 원서를 사 놓고 면사무소로 전화, 빨리 오라는 연락을 한 어머니였다. 얼마나 다급했으면 면사무소를 떠올리고 거기로 갔을까. 자신이 없는 나는 두려워 부산의 대학에 쉽게 입학했다. 그 실패 때문에 오랜 세월 꿈속에 시험지를 받아 놓고 헤매는 밤에는 온 얼굴에 식은땀이 흘렀다. 나는 어머니의 가슴에 한을 남긴 딸이었다.

어느 해 여름 어머니와 고모를 택시로 모시고 해운대 암소 갈비집에 단 한번 간 것이 제일 큰 효도였을까. 고모는 박정희 대통령이 간 갈비집을 조카 때문에 갔다면서 늘 자랑했다고 한다.

내 친구 남편은 경주 출신으로 능력 있는 회사 사장이었다. 신라를 만든 6부 촌장 중 손씨 가문임을 내세운 일은 없었지만 은근히 자긍심이 살아 있는 집안이다. 그 사장이 자기 어머니에게 바치는 효도는 남달랐다. 어머니가 차차 힘드시자 어머니를 부산 자기 집에 모시고 살게 됐다.

내 어머니는 별보고 밭에 나가 별보고 집으로 들어온 세월을 보내었소. 앞으로 어머니가 틀린 말씀을 하더라도 예 예 이외 어떤 대꾸도 해선 안 되오.” 친구는 집안이 편하려면 말없이 남편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는 효도하는 아들 덕에 편한 노후를 살다 가셨다.

하지만 세상은 변해도 너무 변했다. 효를 바치는 아들도 며느리도 찾기 힘 든다. 부모가 혼자되면 갖은 말로 부모를 설득, 재산을 자기 앞으로 이전한 뒤 홀대하는 아들딸들이 의외로 많다. 어머니 혼자 살던 아파트를 팔아 함께 살면 편하게 모시겠다고 설득하던 아들 며느리는 변해 버렸다. 공원에 가면 하소연하는 이런 노인네들이 의외로 많다.

효는 사랑의 기본이다. 효가 사라진 사회는 사랑도 신뢰도 다 사라져 삭막 하다. 우리 가정은 어떤지 생각해봐야 하는 가정의달 5월이다. 

소리꾼 장사익의 노래 꽃구경을 들으면 왠지 눈물이 베어 온다. 피를 토하듯 독특한 노래 색깔이 잔잔한 슬픔의 안개 속으로 몰고 가는 것 같다.

어머니 꽃구경 가요/ 제 등에 업히어 꽃구경 가요./ ...어머니는 좋아라고 아들 등에 업혔네 ...산자락에 휘감겨 숲길이 짙어지자/...어머니는 그만 말을 잃더니/ ...한 웅큼씩 한 웅큼씩 솔잎을 따서/ 가는 길 뒤에다 뿌리며 가네./ 어머니 지금 뭐 하나요/ 솔잎은 뿌려서 뭐 하나요/ 아들아 아들아 내 아들아/ 너 혼자 내려갈 일 걱정이구나/ 길 잃고 헤맬까 걱정이구나.’

시인 김형영의 따뜻한 봄날을 장사익이 곡을 붙여 꽃 구경이란 제목으로 부른 노래다. 그 옛날 고려장 하기위해 노모를 업고 산으로 가던 아들 등에 업힌 어머니가 아들이 내려갈 때 길을 잃고 헤매 일까 솔잎을 뿌린다는 가슴 찡한 내용이다. 고려 시대 나이든 부모를 산에 버렸다는 설화가 소재지만 실제로 고려장이라는 말은 옛날 어느 자료에도 없다고 한다. 몹쓸 병에 걸린 사람들을 산막에 격리시킨 것은 나라마다 있은 것은 사실이다.

일찍이 하느님은 자신을 대신 할 수 있도록 어머니를 만드셨다고 유대교 경전은 전한다. 부모가 아니면 속 썩이는 자식들에게 하느님처럼 끝없는 사랑을 베풀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꽃구경 뒷 소절 아들이 아들아 내 아들아 / ...길잃고 헤맬까 걱정이구나.’ 모정의 극치인 이 소절이 더욱 가슴 아프게 한다.

내 어머니가 내게 가진 깊고 따뜻했던 사랑을 당연한 듯 받아 드렸을 뿐 제대로 효도하지 못한 지난날이 떠오른다. 젊었을 때 조선방직에 다니셨던 어머니는 공부 잘하고 착한(?) 나를 성공시키려고 마음속으로 끔찍이 애썼다. 그때 집안 형편은 말이 아니었다. 어머니 아버지가 모은 재산이 거의 다 없어져 생활이 어려웠다. 믿었던 내가 서울 A대학에 떨어지자 아무 말 없이 재수에 동의했다.

두 번째 시험을 치려고 마지막 정리 차 고향 서재에 가 있는 나에게 그 대학 다니는 집안 조카에게 부탁 S대 원서를 사 놓고 면사무소로 전화, 빨리 오라는 연락을 한 어머니였다. 얼마나 다급했으면 면사무소를 떠올리고 거기로 갔을까. 자신이 없는 나는 두려워 부산의 대학에 쉽게 입학했다. 그 실패 때문에 오랜 세월 꿈속에 시험지를 받아 놓고 헤매는 밤에는 온 얼굴에 식은땀이 흘렀다. 나는 어머니의 가슴에 한을 남긴 딸이었다.

어느 해 여름 어머니와 고모를 택시로 모시고 해운대 암소 갈비집에 단 한번 간 것이 제일 큰 효도였을까. 고모는 박정희 대통령이 간 갈비집을 조카 때문에 갔다면서 늘 자랑했다고 한다.

내 친구 남편은 경주 출신으로 능력 있는 회사 사장이었다. 신라를 만든 6부 촌장 중 손씨 가문임을 내세운 일은 없었지만 은근히 자긍심이 살아 있는 집안이다. 그 사장이 자기 어머니에게 바치는 효도는 남달랐다. 어머니가 차차 힘드시자 어머니를 부산 자기 집에 모시고 살게 됐다.

내 어머니는 별보고 밭에 나가 별보고 집으로 들어온 세월을 보내었소. 앞으로 어머니가 틀린 말씀을 하더라도 예 예 이외 어떤 대꾸도 해선 안 되오.” 친구는 집안이 편하려면 말없이 남편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는 효도하는 아들 덕에 편한 노후를 살다 가셨다.

하지만 세상은 변해도 너무 변했다. 효를 바치는 아들도 며느리도 찾기 힘 든다. 부모가 혼자되면 갖은 말로 부모를 설득, 재산을 자기 앞으로 이전한 뒤 홀대하는 아들딸들이 의외로 많다. 어머니 혼자 살던 아파트를 팔아 함께 살면 편하게 모시겠다고 설득하던 아들 며느리는 변해 버렸다. 공원에 가면 하소연하는 이런 노인네들이 의외로 많다.

효는 사랑의 기본이다. 효가 사라진 사회는 사랑도 신뢰도 다 사라져 삭막 하다. 우리 가정은 어떤지 생각해봐야 하는 가정의달 5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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