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내가 늙었구나 ‘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사람마다 다소 다르기는 하지만 그걸 나이 50에 느끼는 분도 있고, 70에 느끼는 분도 있다고들 합니다. 사는 게 마냥 바쁘고 재미있었다는 생각이 뒤로 슬그머니 밀리면서 몸과 마음이 조금씩 무겁게 느껴지고, 인생이 앞으로 틔어있다기 보다는 뒤돌아봐 지면서 내 앞의 시간들이 마치 좁은 골목을 돌면 뭐가 있는 가하고 보일 듯 말 듯 합니다.
다 살은 것도 아니고, 남아있는 세월이 그다지 길다고 여겨지지도 않는, 중노년의 이쯤에서 내인생, 내가 살아온 세월에 대해 뭔가 생각과 질문이 필요하다는 자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퇴직 후, 부산(釜山)의 교통 중심인 서면에 ‘한국다잉매터스(KoreanDying Matters)’를 개소하고 3년 정도 중노년기 발달과정에 있는 분들과 ‘나의 삶과 죽음’이란 주제로 많은 학습모임을 가졌습니다.
물론 이 주제를 변용하여 숱한 제목의 강의들을 나가곤 했습니다. 그 동안 많은 활동지를 만들어 강의와 모임을 이끌어 왔습니다. 그러면서 참여하신 분들로부터 많은 피이드백을 주고 받았습니다. 그 결과 이제는 학습자나 강사들이 좀 더 많은 분량들을 소화해 낼 수 있겠다는 판단이 들어, 그 활동지들을 모아 새로이 책으로 만들어 보았습니다.
좀 더 세밀히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드려다 보고, 남은 미래도 잘 계획할 수 있도록 하자는 목표로 책이 기획 되었습니다 - 나는 누구인가? 나의 삶(역사) 적어보기, 나의 과거를 지나 현재 성찰하기와 미래 계획하기 등이 그책에 포함되고자 했습니다. 질문에 답해 봄으로써 한 사람의 ‘자서전(自敍傳, Autobiography)’ 만들기가 시작되고 드디어 완성된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래서 ‘엔딩노트- 나의 작은 자서전 만들기(산지니)’가 나오게 되었습니다. 이 책을 자주 펼치면서, 자신의 생각, 느낌들을 적어보기만 하면 됩니다. 가급적 조용한 시간이면 더욱 좋겠습니다. 이 책을 통해 지난 시간을 톺아보며, 지금의 자신을 성찰하며, 이제부터 남은 시간들은 어떻게 보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어린 시절의 기억들 - 그동안 잊고 살았기 때문에 생각이 잘 떠오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이 책의 질문에 하나하나 답하다 보면 먼 기억 속의 일들이 실타래처럼 삐쳐 나오면서 드디어 무언가 하나가 생각나서 한 칸을 채우면, 점점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의 지난 삶들이 기억나며, 드디어 여백이 자신의 글로 다 채워질 것입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책을 펴서, 적고 또 적고 해 보면, 자신이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정연히 알 수 있고, 그 긴 시간들을 돌이켜보니 ‘지금의 나’는 얼마나 칭찬 받을만한 인간인 가가 알아질것입니다.
두려워 마시고, 이 책을 통해 ‘숨어 있던 당신 삶의 의미들’을 찾아 내길 바랍니다. 당신의 ‘작은 자서전 쓰기’에 열심히 도전해 보길 바랍니다. ‘자서전’은 어느 새 나이가 들어, 슬슬 내 삶을 정리하고 싶은 시기에 작성되기 때문에 가끔 내 인생의 마지막 내책 일 수도 있다는 의미에서 ‘엔딩노트(Ending Note)’라 불리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책도 한편으로는 나의 ‘엔딩노트’이기도 합니다. 페이지 마다 답해야 하는 많은 물음들이 있습니다만, 그 물음 어디에도 정답이란 없습니다. 그 질문들을 읽고 떠오른 자신의 생각이 ‘바로 정답’입니다. 적은 뒤 다시 적고 싶다면 되돌아가 고쳐도 됩니다.
여백이 있는 한 답들은 수정되고 또 수정되어도 됩니다. 오히려 수정될 수록 더욱 명확히 스스로가 이해될 것입니다.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 있으면 뛰어 넘어도 됩니다. (혹시 적기가 힘든다면, 질문들에 입술로, 눈으로 답하셔도 됩니다. 이 질문들을 읽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그다음은 그 질문에 대해 생각하는 것입니다.
책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당신의머리 속에는 많은 생각, 감정들이 떠오를 것입니다. 당신과 당신이 살아 온 그 시간들 속에 들어 있던 생각, 감정들을 찾아 내는 것이 두번째로 중요한 일입니다. 그리고 보다 자세히 자신을 성찰하기 위해 연필을 들어 봅니다. 적어봅니다. 적는 작업은 나의 생각, 감정을 보다 선명히 알수 있게 해 줍니다.
그리하면 당신은 분명 행복감을 느낄 것입니다. 안 적어도 됩니다만 가급적 적을려고 노력하세요.) 과거는 이미 지나갔습니다. 그 지나가 버린 시간들에 아쉬운 것들이 왜 없겠습니까만, 우리는 그 아쉬움 속에 담겨있던 무언가를 찾아 그것을 통해 지금의 나를 더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단서를 찾을려고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아직도 새로운 인생을 만들 수 있는 많은 시간들을 당신은 가지고 있습니다.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면서, ‘나는 잘 살았노라’고 말할 수 있는 기회가 올 것입니다. 이 ‘작은 자서전’은 마지막까지 가지고 있을 보물이 될것입니다. 이걸 사랑하는 가족에게 남기고 가셔도 됩니다. 아마 어떤 유산보다도 귀하고 귀한 것일 것입니다. 삶과 죽음은 연결되어 있습니다.
언젠가 당신도 삶의 끝자락쯤에서 죽음을 가까이 바라보는 날이 있을 것 입니다. 당신에게도 언젠가 ‘마지막 오늘’이 올 것입니다. 그 날을 위해 이 책을 펼친 오늘부터 더욱 하루하루를 알뜰하고 행복하게 보내시기를 기대합니다.(이 글은 이기숙의 신간 ‘엔딩노트-나의 작은 자서전 만들기(산지니,2019)’에서 인용하였습니다)
[2019년 6월 25일 제113호 13면]